2016 문화계결산<7> 연극ㆍ뮤지컬
올해 연극계는 정부 검열논란에서 시작해 이를 비판하는 연극제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로 끝난 한 해였다. 지난해 박근형 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서 시작된 정부의 작품 검열 의혹은 올 하반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확대됐다. 문화예술인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잇따라 발표했고, 최순실 국정농단은 각종 패러디와 풍자극을 만들었다. 뮤지컬계는 대형 창작 뮤지컬을 잇따라 선보였다.
블랙리스트 파문에 ‘검열각하’ 공연 인기
연극계 검열 의혹 시작은 지난해 박근형 연출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문화예술위원회 대본 공모 지원, 우수작품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고도 지원금 포기 종용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오면서부터다. 이윤택 연출의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 심사 1위를 받고서도 지원작 선정에서 탈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연출은 2013년 연극 ‘개구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고, 이 연출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바 있다.
연극계에서 들끓던 검열 논란은 하반기 문화계 전체로 확대됐다. 10월 본보의 단독보도로 2015년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서명 문화인 594명, 2014년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754명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 9,473명이 드러났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과 관련자 진술을 통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를 확인 중이다.
논란은 올해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6~10월 5개월 동안 22편, 110회의 공연이 올려졌고, 총 6,671명이 관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10회차 공연 중 40회차가 매진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연에 필요한 비용은 후원 모금 방식으로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과 직접 후원을 통해 모은 4,800여만원으로 충당했다. 일체의 공공지원 없이 연극인들 스스로 연대해 만든, 우리 연극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란 평이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올해 1년의 연극 중 중요한 창작극이 국립극단이나 남산예술센터 같은 공공극장이 아니라 거의 ‘검열각하’에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의 베스트 3’로 ‘검열각하’의 일환으로 발표된 김재엽 연출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 이양구 연출의 ‘씨씨아이쥐케이’, 이은준 연출의 ‘괴벨스 극장’을 꼽았다. 김 평론가는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작품성이나 완성도나 미학, 모든 측면에서 올해의 연극제 가운데 ‘권리장전’이 최고였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400주년 기념상도 푸짐
원래 올해 화두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었다. 거기에 걸맞게 어느 때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무대에 자주 올랐다. ‘햄릿’이 가장 많이 올려졌는데, 극단 백수광부는 창단 20주년 기념극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다 오늘날 한국을 투영한 작품 ‘햄릿아비’를 올려 제37회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인 ‘햄릿’은 박정자 손숙 정동환 유인촌 윤석화 등 원로 연극인들이 모여 유례없는 매진을 기록했다. 서울시극단은 ‘햄릿’을 한국의 재벌 2세로 각색한 연극 '함익'을 내놨고, 영화배우 김강우는 햄릿을 극중극으로 각색한 ‘햄릿 더 플레이’로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 서울시극단의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했고 극단 76단은 ‘리어왕’을 비튼 ‘리어의 역’을 올렸다. 영화배우 문근영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 ‘페리클레스’, ‘실수연발’ 등도 관객을 만났다.
뮤지컬계까지 최순실 풍자
뮤지컬계는 ‘위키드’, ‘킹키부츠’, ‘아이다’ 등 라이선스 대작의 재연으로 여전히 인기를 누렸다. 창작 뮤지컬로는 1차대전 당시 이중스파이를 소재로 한 ‘마타하리’, 19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 김준수를 앞세운 ‘도리안 그레이’ 등 굵직한 작품들이 올랐다. 그러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뮤지컬 기획사들의 주먹구구식 부실 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투자금 돌려막기 등으로 위기설이 돌았던 엠뮤지컬아트의 라이선스 뮤지컬 ‘록키’의 경우 호기로운 국내 초연이었음에도 결국 프리뷰 공연을 하루 앞두고 취소됐다.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역시 올해 재공연을 앞두고 지난해 초연에 참여한 스탭들과 임금 체불 문제를 두고 구설수에 올랐다.
연극계처럼 최순실 게이트를 뮤지컬계가 그냥 놓아둘 리는 없다. 뮤지컬 ‘오!캐롤’, ‘구텐베르크’ 등에서 현 사태를 비튼 ‘사이다’ 대사가 쏟아졌다. 변정주 연출과 뮤지컬배우 32명이 함께 한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아예 촛불집회에 나가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가운데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와 ‘내일로’를 불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 2016 문화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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