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2.6
1918년 2월 6일 영국 의회가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운동은 저 사진 속 여성들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을 1860년대부터 시작됐다.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여성 참정권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Emily W, Davison, 1872~1913)이 런던 인근 엡섬다운스 더비에 출전한 국왕 조지5세의 경주마가 결승점으로 질주하던 순간 몸을 던져 숨진 게 불과 5년 전인 13년 6월이었다. 그의 외투에는 ‘Votes For Wome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 사진의 삼각 깃발에 새겨진 문구도 그거였다.
여성운동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는 서명과 의회 청원으로 참정권법을 얻으려다 잇달아 실패하자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 비합법 투쟁을 시작했다. 런던 도심의 진열장 유리창 부수기부터 국립미술관 작품 훼손, 전철이나 유명 정치인의 집 방화 등 그들의 투쟁은 가히 무정부주의자들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데이비슨도 서프라제트(Suffragette, 온건파 운동가 Suffragist와 구분해 전투적 참정권 운동가를 지칭하던 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격렬한 항의 시위로 번졌고, 체포와 구금, 투옥과 단식투쟁이 뒤따랐다.
1918년의 참정권은 하지만 여성의 1차 대전 전시체제 협력의 보상이기도 했다. 팽크허스트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의 참전을 지지하며 여성들의 협력을 적극 독려했고, 남성 의회는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이 21세 이상 참정권을 온전히 인정한 것은 또 10년 뒤인 1928년 7월이었다.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는 1893년의 영국령 뉴질랜드였고, 유럽에서는 1906년 핀란드가 문을 열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획득은 북유럽과 소비에트연방, 캐나다보다도 늦었다. 하지만 서프라제트의 투쟁과 성취는 세계 여성 참정권운동의 분수령이 됐다. 미국의 참정권운동도 거기서 자극 받아 확산됐고,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결실을 맺었다. 그 힘이 저 웃음을 낳았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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