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정점으로 향하면서 태극기도 수난을 겪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모임의 주요 집회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태극기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훼손된 태극기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카페의 한 회원은 태극 깃대를 죽창처럼 깎은 사진 공개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기사). 이 회원은 “탄핵이 인용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이므로 평화적 태극기 집회는 그 즉시 전투 태세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하며 사진 세 장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태극기를 대나무에 매달고, 대나무 끝을 날카롭게 깎아 무기로 둔갑시킨 모습이 담겨있다. 또, 평상시를 위해 깎인 대나무 조각을 테이프로 붙여 놓은 사진도 함께 공개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게시물은 게재 당일 삭제됐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의 서석구 변호사는 한 휴게소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우동을 먹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상에선 한 행인이 서 변호사를 향해 “태극기가 우동을 먹는 데 입는 옷이냐. 우리나라 국기를 왜 그렇게 더럽게 입느냐”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 영상은 조회수 30만건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영상을 본 일부 누리꾼들은 “식사할 땐 태극기를 고이 접어놨어야 한다”, “더러워질 우려가 있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앞서 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태극기를 가방에 구겨 넣는 장면이 포착돼 ‘국기 훼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태극기의 수난은 집회 현장 곳곳에서도 포착됐다. 버려진 태극기가 대표적이다. 온라인상에서 집회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태극기들이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 있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태극기를 버린 주체에 대해선 이견이 엇갈리지만 ‘국기 훼손’이란 부정적인 입장엔 의견이 일치했다. 박사모 카페에 공개된 집회 사진에선 구김이 가득한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도 등장했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에는 국기에 때가 묻거나 구겨진 경우에는 세탁하거나 다려야 한다는 조항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는 분명하다.
태극기를 재단해 조끼 형태로 만들어 입는 참석자들도 등장했다. 태극기와 특정 단체의 상징기를 합쳐 하나의 깃발로 제작하거나 특정 문구가 적힌 태극기도 나왔다. 태극기 여백에 ‘역사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메시지를 쓰는가 하면, 집회 참석자의 소속 단체나 지역 명칭을 기재하기도 했다. 이 사진을 본 시민 A 씨는 “국기를 집단화, 개인화하고 있다”며 “태극기를 단체의 상징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라고 꼬집었다.
태극기가 곳곳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모욕 의도가 없는 이상 태극기 훼손 자체로 처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형법에선 국기 훼손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만 모욕할 의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기법에는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다. 정남철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공개된 장소에서 태극기를 훼손하는 건 부적절한 행위”라면서도 “국기법에 태극기 훼손에 대한 금지 규정은 있지만 직접적인 처벌 규정은 없어 국기법으론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한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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