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핀란드를 여행했던 지인이 들려준 경험담이다. 지인은 당시 핀란드 수도 헬싱키 마켓광장의 한 노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이 곳은 배가 드나드는 부두를 맞댄 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도서관, 시청사 등이 몰려 있는 헬싱키 번화가. 커피를 마시다 문득 주위를 둘러 봤는데 핀란드 대통령이 산책을 하고 있더란다. 깜짝 놀라 대통령이 자리를 뜬 뒤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대통령은 가끔 광장에 와서 시민들과 섞여 식사도 한다”며 별 일 아니라는 투의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찾아 봤다. 이 대통령은 원래 서민층이 주로 모여 사는 칼리오라는 지역에 거주했는데, 그 동네에서는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산책하는 대통령을 종종 목격한다고 한다. 핀란드 전설 속 캐릭터 ‘무민(moomin)’이 새겨진 시계를 차고 여가 시간에는 시민들과 어울려 벨리댄스를 추기도 한다. 재임 12년 내내 소탈, 검소의 행보를 이어간 그에게 국민은 80%의 지지율로 화답했다. 핀란드의 ‘국민 마마’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 이야기다.
새삼 먼 나라 대통령 얘기를 꺼낸 건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떠올라서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퇴근길에 광장에 들러 시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도 남대문시장에서 장을 보겠노라 다짐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강조한 말이기에 진심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그의 탈(脫) 청와대 선언이 반드시 신념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 사건팀에서 일하면서 매주 토요일 수많은 분노와 마주했다. 그 해 10월 29일 광화문 한 귀퉁이에서 처음 타올랐던 촛불이 100만개의 횃불이 되어 청와대에 다다르기까지 꼭 34일이 걸렸다. 공권력이 법조문이란 합법적 무기를 들이대며 북상을 가로막을 때마다 촛불은 법원 판결이란 정당한 되갚음으로 이겨내면서 북악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스물세 차례 촛불 세례로 환히 빛났던 광화문을 보았을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을지언정 민심과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권위와 불통, 특권의 울타리를 허물지 않고서는 ‘국민 속으로’ 외침은 허망한 메아리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주권재민이 민주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국민의 대표가 심부름꾼이 되는 것임을, 그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변변히 향유하지 못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부분에서 특히 ‘정상의 비정상화’에 힘썼다. 짧은 해외 일정에도 호텔방에 전용 파우더룸을 설치하고 침대까지 바꿨다는 소식이 들리자 관련 제보가 쏟아졌다. 내가 낸 세금으로 머슴이 돼주길 바랐던 대통령은 왕국 공주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사이 정반대의 상황을 겪다 보니 여론도 가슴 벅찬 모양이다. 4년 전 입던 바람막이를 여태 애용하는 대통령의 소탈함에 칭찬이 식을 줄 모른다. 냉정해 지자. 이제 겨우 “듣겠다”는 대통령을 갖게 됐을 뿐이다. 다시 시민에게 돌아온 권력(아직까지는)에는 충분히 축배를 들되, 우리 심부름꾼이 괜찮게 일하는지 좀 더 눈을 부릅떠야 한다.
2012년 퇴임한 할로넨 전 대통령이 지금도 핀란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서민 코스프레’를 해서도, 진짜 서민의 삶을 살아서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능을 제대로 썼기 때문이다. 우유 1리터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물가를 논하는 아줌마 대통령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을 국민은 없다. 빈 손 퇴임을 약속한 문 대통령의 5년 뒤는 어떤 모습일까. 그 때도 광화문에서 막걸리 마시는 그를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익숙해진 그 장면이 더 이상 뉴스에 오르지 않기를 소망한다.
김이삭 국제부 기자 hir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