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본 이름은 미나토자키 사나예요.”(트와이스 사나)
“뭐? 민화투?” (이수근)
지난주 ‘아는 형님(JTBC)’ 트와이스 편에 등장한 대화의 일부다. ‘아는 형님’의 웃음 코드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방송의 금기고 뭐고 상관 없는 멘트를 막 던지고, 그것은 대부분 ‘아재’라고 부르는 나이대와 그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 만한 것이다. 이를테면 트와이스의 모모를 보고 뜬금 없이 1970년대 노래인 ‘모모’를 합창하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는 형님’의 고정 출연자들처럼 1970년대 생의 ‘아재’들은 대부분 이 프로그램을 아무 생각 없이 웃기에 딱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대는 ‘아재’에 속해도, 성별은 여자인 나 같은 경우에는 ‘반반’이다. 분명 웃긴 부분이 있지만, 때로는 꽤나 불쾌한 경우도 많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쾌’라기보다는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아는 형님’의 고정 출연자 강호동, 이상민, 이수근, 서장훈, 민경훈, 김영철, 김희철은 대부분이 TV 예능에서 ‘A급’ 이상의 대우와 인정을 받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아는 ‘능력자’들이다.
이처럼 기가 센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아는 형님’에서는 게스트가 처음부터 기싸움에서 고정 출연자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기싸움을 뚫고 나가는 게스트가 나오면 그 회차는 유독 재미가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채널이 바로 돌아가는 게 바로 ‘아는 형님’이다.
최근에 싸이가 출연했을 때다.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면 ‘월드 스타’로 떠받들 텐데, ‘아는 형님’에서는 살벌하게 멘트 기싸움을 이어갔다. 싸이가 진지하게 “신곡 나와서 홍보하는데, 나는 다른 프로 안 나가고 이 프로에 다 걸었다”고 말하면,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경력이 있는 이수근이 “다 걸고 그러지 마”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90년대 가요는 몇 초만 들어도 노래와 안무를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싸이 앞에서 입이 벌어질 정도의 실력으로 기를 죽이는 김희철과 이수근의 맹활약,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기투항에 가까운 제스처를 취하는 싸이. 이런 게 ‘아는 형님’의 매력이다.
하지만 ‘아는 형님’의 고정 출연자들이 예능의 ‘선수’들만 모여 있기 때문일까. 웬만한 출연자는 이들의 ‘기’를 누르기 어렵다.(싸이가 헤맬 정도이니까)
여기에 학교 교실 안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져서 반에서 가장 잘 놀고, 싸움도 잘 하는 ‘일진’들이 그보다 약한 존재들을 ‘데리고 논다’는 느낌까지도 들 때가 있다. 프로그램 내의 권력 구도(?)가 고정 출연자들이라는 강자들이 게스트라는 약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느낌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막 던지는’ 농담도 때로는 게스트라는 약자를 찍어 누르거나 놀리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끔씩은 출연자들이 ‘대장’이라 할 만한 강호동을 꽤나 놀리고 괴롭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애교 수준이다. 전체적인 ‘아는 형님’의 분위기와 그림은 ‘싸움짱’ 강호동, ‘TV와 아이돌 상식짱’ 김희철, ‘건물주’ 서장훈, ‘사고왕’ 이상민이 기본적으로 축을 이루면서 여기에 이들 못지않은 기와 끼로 뭉친 민경훈, 김영철이 서로 물어뜯으면서 노는, 남학생들 특유의 ‘서열 정리’ 혹은 세렝게티 초원의 맹수들이 자기들끼리 노는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줌마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철저히 마초들의 세계다. 이 세계를 찾아온 초대손님이 깜찍한(혹은 매우 아름다운), 하지만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때로는 ‘아는 형님’의 세계 자체가 말발 센 남자들이 잔뜩 모인 흥겨운 술자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느낌이 어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보다가도 어느 순간 불쾌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아는 형님’은 2015년 12월 처음 방송될 때 ‘여운혁 PD와 강호동의 재회’로 화제가 됐다. 여운혁 PD는 과거 MBC에서 ‘황금어장-무릎팍 도사’로 강호동과 최고의 호흡을 맞췄던 주인공이다. (지금은 여운혁 PD가 JTBC에서 퇴사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을 두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무릎팍 도사’의 역사를 생각하면 복합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황금어장’은 애초에 ‘무릎팍 도사’가 메인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라디오스타’가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오히려 ‘무릎팍 도사’는 화제성에서 점점 밀려서 폐지됐고, ‘라디오스타’는 살아 남아 지금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
그래서인지 ‘아는 형님’은 ‘무릎팍 도사’와 ‘라디오스타’의 어색한 조화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스타를 초대해서 그 사람을 파헤치되, ‘근본 없는 농담’ ‘막 던지는 멘트’로 물어뜯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형님’에는 ‘라디오스타’가 갖고 있는 특유의 ‘B급 정서’가 없다. 오히려 강호동을 중심으로 한 ‘맹수 마초’의 세계에 먹잇감(게스트)을 떨어뜨려 놓고, 상대적인 약자가 이 맹수들과 어떻게 싸우는지를 지켜 보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같다.
‘아는 형님’이라는 ‘마초들의 세계’는 그래서 나 같은 시청자에게는 참 피로하다. 이미 기득권에 자리를 잡고 있는 힘센 남자들이 여유 있게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나름 기가 센 척 맞서야 하는, 사회 속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웃기고 힘 센 남자의 ‘막 던지는, 근본 없는 개그’에 주변 남자들이 와하하 폭소를 터뜨리고, 그 안에서 나 혼자 바보된 것 같은 느낌으로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함께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른척 해야 할지, 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느낌은, 아마도 ‘짱’ 자리에 앉아 봤던 남자들은 평생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기분일 것이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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