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송년의 밤, 스코틀랜드 의회는 여야 의원들이 함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합창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old long since’라는 의미라는 저 스코트어 노래는 하지만, 200여 년 전 처음 불린 이래 세계인의 작별의 노래가 됐다. 노랫말을 시로 남긴 이가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다.
에이셔(Ayrshire) 앨러웨이(Alloway)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기에는 농장 품삯 일꾼이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대를 이어 소작 농부가 됐다. 그는 농사에 운도 재능도 없었던 듯하다. 농사보다 구전 노랫말을 개사하고, 당시 유럽 구석구석 기운이 스미던 계몽주의적 사상을 버무려 창작도 하면서, 답답한 시절을 견뎠다고 한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노래를 겨냥한 거였다.
1786년, 가난이 지겨워 신대륙 자메이카로 이민을 떠날 결심을 한 27세의 그는, 뱃삯을 마련하기 위해, 써 모은 시들을 ‘주로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쓰인 시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그 시집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노랫말 같은 시들은 잉글랜드 중심의 도도한 고전풍 문학과 달리 서민들의 언어로 그들의 정서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 구애와 사랑의 서정시가 많았지만, 계몽적 박애와 자유를 노래한 시들, 계급 억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도 적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민들이 그의 시집을 읽었고, 귀족과 지식인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명사가 된 그는 이민을 포기하고 애든버러의 상류 계층민들과 어울렸지만, 그의 경제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징세 관리원으로 취직해 일했지만, 때는 프랑스혁명의 시기였다. 그의 시를 즐겨 읽던 이들도 혁명 이념을 찬양하는 그의 글은 못마땅해했고, 무엇보다 스스로도 세리인 자신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젊어서부터 술을 즐겨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는 그는 1796년 7월 21일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red red roses’ ‘A man’s a Man for A That’ 등 그의 시들은 모두 노래가 됐다. 올드 랭 사인은 번스가 한 노인의 노래에 착안해 1788년 지은 시로 작곡가 윌리엄 쉴드가 곡을 붙였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그의 생일인 1월 25일 지녁을 ‘번스의 밤’이라 부르며 지금도 국경일처럼 기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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