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보장성 항목에만 30조
5년 간은 누적 적립금 20조 활용
기존 보험료 인상률 유지 예정
내년부터 재정 적자 ‘5년 후 바닥’
건강보험 대수술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이는 방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문제는 재정이다. 정부는 5년간 건보 누적 적립금 등을 활용하고 기존 보험료 인상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나, 5년 이후 불어날 재정 마련을 위해 결국 상당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보 보장성 강화는 국내 보건계의 오랜 숙원이었으며, 그 방향은 전반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2014년 기준 국내 의료비 중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비율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40.8%)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34개국 평균 가계부담비율(19.6%)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수치이며, 프랑스(7.0%) 캐나다(14.3%) 스웨덴(15.5%) 등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일 만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큰 상황이다. 건보 보장률(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 60% 초반대가 고착화하면서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상당했다.
정부 목표대로 2022년까지 보장률 70%를 달성하게 되면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국민 1인당 연 평균 의료비 지출액이 50만4,000원(2015년 기준)에서 2022년에는 41만6,000원으로 18% 감소하게 된다. 연 500만원 이상 의료비를 부담하는 환자의 수도 39만1,000명에서 13만2,000명으로 66% 줄고, 저소득층(하위 50%)은 95%까지 감소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OECD 평균 건보 보장률이 입원 90%, 외래 80% 수준인데 정부의 목표가 70% 수준인 것은 부끄러운 수치”라며 “단기 목표로 70%를 산정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어떻게 80% 이상을 달성할 지 밝히는 게 옳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인 보장률 80%까지 끌어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보다 7%포인트 가량 보장률을 높이는데도 재정부담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정부는 재원 마련 방안을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 2022년까지 신규 보장성 강화항목에 총 30조6,164억원을 투입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 부담 최소화’라는 기본 틀에서 ▦누적 적립금 사용 ▦국고 지원금 확대 ▦누수 방지 대책 등 현재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 흑자로 인한 누적 적립금이 20조656억원인데 이 중 10조원을 보장성 강화에 5년간 투입하고,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향후 5년간 보험료 인상률은 지난 10년간(2007~2016년) 평균 인상률(3.2%)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올해 6조9,000억원 수준)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재정누수를 막기 위한 방지 대책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추가 국고 투입액수, 재정누수 방지 대책의 구체적인 내역은 정해진 것이 없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재정누수 방지를 위한) 조사 인력이 부족할뿐더러 불법적인 진료를 밝혀내기 어려울 만큼 애매한 상황이 많고, 의료계와의 마찰도 감안해야 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년간 흑자였다고 해도 향후 건강보험의 재정 전망은 썩 밝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로 당장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되며, 현재 20조원인 누적 적립금도 2023년에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 추계에는 이번 보장성 강화 계획 지출 중 일부만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7대 사회 보험 중 건강보험의 수익률은 지난해 1.7%로 군인연금과 함께 가장 낮아 ‘자산 불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기존 적립금이 그나마 버텨줄 5년이 지나고 2023년부터는 상당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5년 동안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적립금 등을 활용해 버티더라도 진짜 돈이 필요할 때는 정권이 끝난 5년 뒤”라며 “현행보다 획기적으로 높은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해 보이며, 국민들도 보장성 항목이 늘어난 만큼 이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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