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삼각형’이 있다. 각 점엔 야뇨증(오줌싸개) 방화 동물학대가 위치한다.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개발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특별수사관 존 더글러스는 저서 ‘마인드헌터(Mindhunterㆍ1995)’에서 저 세 가지를 연쇄살인범의 유년기 공통점으로 꼽았다. 저들 모두를 반복한 아이가 후에 반사회적 행동 등을 저지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정신과 의사(J.M. 맥도널드)의 ‘3합 이론’도 있다. 딱 떨어지진 않지만 살인마 유영철 강호순은 동물 살해나 해부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가 자면서 오줌을 지린다고, 불장난을 좋아한다고, 동네 개를 괴롭힌다고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보통 자라면서 훈육을 통해 사라진다. 필자도 두 가지나 해당됐다. 전문가들은 ‘일정 연령 이후에도 계속되는’ 상황을 경계하다, 대개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뻔한 얘기라고 눙칠 수 있으나 범죄자를 위한 변명은 아니다. 부모의 방치와 구박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예컨대 이런 얘기다. 엄마는 밥을 늦게 먹는다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젓가락을 집어 던졌다.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었다. 남과의 비교는 기본. 뭔가 못하면 당연히 혼냈고, 잘해도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냈다. 아버지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을 본체만체했다. 가끔 말을 건네긴 했다.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키가 작아서 사회생활 힘들 것이다” “너 같은 놈 필요 없다” 등.
겉보기엔 남부러울 게 없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사관학교, 어머니는 명문 여대를 졸업한 이른바 엘리트였다. 내성적이긴 했지만 아들은 모범생으로 자라 명문 사립대에 진학했다. 나쁜 기억을 털어내고 부모에게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작심하고 부모에게 그간 울분을 모두 토해냈지만 돌아온 건 ‘못된 자식’이란 낙인이었다. 열흘이 지난 새벽 아들은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살해했다. 4시간 뒤 “깨면 혼낼까 봐” 아버지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이틀에 걸쳐 부모 시신을 토막 냈고 각지를 돌며 쓰레기통 등에 버렸다. 2000년 ‘명문대생 부모 토막 살인’이라 알려진 사건의 대략이다.
사건 직후 경찰서에서 본 노릿한 조명 아래 솔질되던 핏기 없는 잘린 손, 검은 봉지들에 담긴 내장이 아직 생생하다. 패륜 악마라 지탄받던 범인의 선한 인상과 하얀 얼굴에 놀랐고, 그가 죽인 부모 역시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했다는 얘기에 할 말을 잃었다.
몇 년 전 학대 피해 아동 쉼터에서 만난 여섯 살 아이는 “아빠가 불로 지진” 자국에 흥미를 보이자 옷을 걷어붙이고 몸 곳곳 상처를 드러냈다. 안아 주니 혹여 다치게 할 새라 파르르 떨었다. 쉼터 관계자는 그런 아이가 가끔 또래들을 때린다고 전했다.
최근 잇따른 흉악 범죄들 역시 학대와 폭력의 대물림이 어른거린다. 천인공노할 악행에 면죄부가 될까 봐(나 역시 동의한다) 애써 꺼내진 않지만, 분노가 걷히면 악의 태를 마주해야 한다. 실마리를 제공할 얼마 전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만 건에 육박한 아동학대 신고는 3년 전보다 70% 가량 늘었고 가해자의 8할 이상은 부모였다.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들 영혼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아동학대는 ‘영혼 살해범’이다. 영혼이 죽은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런데도 우린 아동학대에 여전히 관대하다. 법조인 부부가 이국에서 아이들을 차 안에 방치하고, 많은 부모가 “성공이 최선”이란 독선으로 아이들을 닦달한다. 사소한 야단, 쓸데없는 비교가 학대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렇게 악마는 태어난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왕양명) 부모자격증이라도 발급해야 하나.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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