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엘리베이터로 대체 권고
9년이나 지났지만 27곳 아직 남아
60대 계단으로 추락해 1월 사망
크고 작은 사고 끊이지 않아
공사 “안타깝지만 개인 과실 많아
엘리베이터 설치 힘든 곳도” 변명
“너무 무서워요.“
중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 휠체어를 타는 김경용(54)씨는 웬만해서는 서울 지하철4호선 충무로역과 명동역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들 역에는 승강장과 지상을 이어주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한두 정거장 더 가서 내리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다. 김씨는 “리프트를 타야만 나갈 수 있는데, 솔직히 리프트 타기 무섭다”고 손사래를 쳤다. 실제 그는 리프트를 타다가 무게가 갑자기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계단 쪽으로 넘어질 뻔한 아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영등포구 신길역(지하철 5호선)에서 리프트를 타려다 계단으로 넘어진 한모(69)씨가 올 1월 결국 숨을 거두면서 휠체어리프트 안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휠체어리프트를 엘리베이터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 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울 시내 27곳 지하철역에 남아 있는 리프트가 이용자들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교통약자가 타인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만을 이용해 지상과 승강장을 이동할 수 있는 지하철역은 1~8호선 277개 중 250개. 27개역을 제외하면 모두 엘리베이터로 바뀌어 있으며, 확보율로만 보자면 세계 3위에 해당한다는 게 공사 측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그 27곳 지하철역 휠체어리프트에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데 있다. 2016년 한 노인이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던 중 리프트가 흔들리면서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9년에는 삼각지역에서 휠체어리프트가 전동휠체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최모(87)씨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왼쪽 안구가 파열되고 양쪽 발목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실제 리프트를 이용하는 이들은 보기보다 리프트 이용이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숨진 한씨의 경우에도 역무원을 부르기 위해 버튼을 누르려다가 계단 밑으로 떨어졌는데, 버튼이 왼쪽에만 설치돼 있어 오른손만 움직일 수 있는 한씨가 휠체어를 반 바퀴 돌려 계단을 등지고 호출버튼 쪽으로 가다가 추락했다. “개인의 실수”라는 게 서울교통공사 측 입장이지만, 한씨 유족 측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 결국 사고를 낳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밖에 리프트 이용자들은 ▦대부분 휠체어를 탄 채 정면에서 호출버튼을 누를 수 없게 돼 있고 ▦호출버튼에서 계단까지 거리가 휠체어 길이보다 짧아 계단 밑으로 구를 위험성이 있다 등 구조적인 문제만 따져도 언제든 한씨처럼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교통공사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 공사 관계자는 “엘리베이터 대체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고, 다만 구조적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려운 곳이 있다”라며 “리프트 사고의 경우 안타깝지만, 이용자의 부주의나 과실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우리에게 접수되는 리프트 사고는 매년 한 건 이상으로 실제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 지하철역에 하루빨리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고 그게 어렵다면 안전 난간 강화 등 좀 더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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