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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제2 조두순 사건이 남긴 것

입력
2018.04.11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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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0년 6월 9일 서울경찰청 기자실.

“특종이 아이 안전보다 중요한가? 아이 아버지가 흥분해서 소송을 걸겠단다. 기사 내려라.”

캐묻고 비꼬고 협박하더니 사실상 명령했다. ‘대낮에 운동장서 초등생 납치 성폭행’ 단독 기사가 한국일보 사회면 머리기사로 나가자 생면부지 담당 경찰 간부가 득달같이 전화했다. 요즘 말로 기레기 취급했다.

“다른 아이들 안전도 중요하다. 피의자 이름과 신상, 아이가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지만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관련 정보들은 일부러 가렸다. 내가 아는 아버지 반응은 그게 아닌데?”

시경 캡(사건팀장)으로서 차근차근 답했다. 경찰이 사건 자체를 함구하는 사이 다른 매체는 ‘단독’을 달고 오보를 쏟아냈다. 특종이라며 피의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거나, 인권 운운하는 경찰 편들며 한국일보 보도를 에둘러 비난하는 신문도 있었다.

이틀 뒤 한국일보는 ‘제2 조두순, 다른 학생도 노렸다’는 제목의 후속 특종을 싣고, 기획보도 ‘학교가 위험하다’를 시작했다. 이어 ‘경찰, 제2 조두순 사건 조직적 은폐 의혹’ 기사를 통해, 아이 아버지까지 끌어들인 경찰의 항의가 거짓임을 밝혀냈다. 보도 직후 조현오 서울청장은 “사건 비공개는 영등포서 형사과장의 거짓 보고 때문”이라고 시인한 뒤 사과했다. 당시엔 취재원을 보호하려 그 정도 선에서 끝냈지만, 수뇌부도 책임이 있다. 최상부로 올라간 몇 줄짜리 보고서 입수가 취재의 서막이니까.

아이 아버지는 경찰 거짓말과 달리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며 인터뷰에 수 차례 응했다. 오히려 보도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범인 얼굴이 방송과 신문에 나와 아이에게 TV도 보여줄 수 없다”길래, 한국일보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이듬해 전국 초등학교엔 학교보안관이 생겼다. ‘제2 조두순 사건’ ‘김수철 사건’이라 알려진 사건의 내막이다.

방배초등학교 인질극 이후 다시 학교 안전을 챙겨 봤다. 학교보안관이 신분을 확인했더라도 범행을 막을 수 없었으리란 회의론, 신원이 확실한 부모들 학교 출입만 불편해질 거란 현실론이 불거졌다. ‘안전엔 예외가 없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반론이 입안에서 맴돌 때, ‘8년 전 김수철 사건 겪은 초등학교 가보니’ 부제가 달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등교 뒤 정문 잠그고 강사까지 신분증 대조 등 5중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안다. 사건 당시 학교가 얼마나 시달리고 욕먹었는지를. 그런데도 주변에 더한 불편과 불쾌를 안기면서 그 긴 세월 묵묵히 깐깐한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한 게 대견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불편이라면 우리는 즐겨야 한다. 그게 안전의 시작이다. 아들 학교를 찾은 내게, 심지어 여러 차례 안면이 있는 학교보안관이 꼬치꼬치 캐묻고 확인해 주면 그렇게 뿌듯하다. 정말 낯선 자가 와도 똑같이 하리라 여겨서다. 부지불식간에 전국의 학교보안관들이 수많은 제3, 제4의 조두순을 막았으리라 나는 믿는다.

불편이 어떻게 안전을 담보하는지 풀어 쓸까 궁리하는 중에 두 아이 엄마인 후배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제보라며 카톡을 보냈다.

#2018년 4월 9일 제주.

‘우도 왔어요. 왕복 승선표 끊을 때 승선신고서 두 장 써야 하는데, 한 장만 썼는데도 괜찮다고 해서 돌아갈 땐 신고서 없이 표만 내고 탔네요. 사고 나면 우리는 누락되는 거에요. 유령인간! 5명 (표) 끊었는데 주민증 확인도 1명만 하겠다고 1명만 달라 그러고요. 배에서 표 받는 아저씨들은 우리가 승선표 없으니 엄청 예민하게 신경질 내더라고요. 표 살 때 직원이 그랬다니까 짜증내면서 들여보냈어요. 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느슨해졌어요. 진짜.’

프랑스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대로라면 모든 시민은 ‘그 수준에 맞는 안전’을 누린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세월호 참사 4주기가 코앞이다.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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