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키워드는 할리우드의 오랜 관행인 젠더 차별과 성폭력의 자성과 비판이었다. 진행자 지미 키멜은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할리우드에서 오스카가 가장 존경 받는 까닭은 자신의 손을 남들이 다 볼 수 있게 모은 채 가만히 두는 까닭이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지 않는 까닭”이라는 말로 참석자들을 웃겼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탄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자신의 트로피를 내려놓고 객석의 모든 여성 영화인을 일어나게 한 뒤 함께 박수 받게 했다.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면서 90년 아카데미 역사를 일궈온 모든 여성들과 자신의 영광을 나누겠다는 뜻이자, 개런티 등 여전한 차별에 서로 격려하며 함께 맞서자는 의미였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키워드는 ‘화이트 오스카’, 즉 소수인종 차별이었다. 인기 흑인배우 윌 스미스는 행사 전 ABC뉴스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백인들의 잔치’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덴젤 워싱턴 주연의 ‘맬컴 엑스’(1992) 등을 만든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떻게 2년 연속, 40명 후보 중 비(非)백인이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는가”라며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아카데미의 백인 남성 편향과 그에 대한 비판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1964년 4월 13일 제3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바하마 출신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 1927~)가 ‘들판의 백합(Lilies of the field)’으로 흑인 최초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경이롭고도 심경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다. 즉 영웅적인 활약을 통해 흑인 영화인의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일은 충분히 존중 받을 쾌거였지만, 그의 수상이 아카데미의 인종차별 비난을 희석하는 중화제로 쓰였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흑인 배우로 두 번째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건 무려 38년 뒤인 2002년 ‘데이 트레이닝’의 덴젤 워싱턴이었고, 같은 해 ‘몬스터 홀’의 할 베리가 흑인 최초 여우주연상을 탔다.
포이티어는 백인들이 좋아할 만한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흑인 연기로 백인 오스카의 인정을 받은 명예 백인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60년대 스크린 바깥의 정치적 인권운동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아 또 비난을 샀다. 하지만 그는 헤리 벨라폰테의 절친으로 차별 문제에 민감했던 예술가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삶은 역설적으로 과소평가됐다고 할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는 2009년 그에게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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