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일본의 정치 성향을 일반적으로 ‘우경화(혹은 우익)’로 지칭한다. 민족주의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민족주의가 우경화의 일부분인 만큼 일본의 우경화가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 성향을 나타낼 때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지금 일본의 정치 성향을 우경화라고 하는 것은, 옆집 아저씨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자 동쪽으로 간다고 답하는 것과 같다. 틀린 것은 아니나 정확한 답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경화는 정치 성향중 좌경화와 대립되는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경화의 방향에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보수주의,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 파시즘, 천황숭배사상 등 여러 성향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한국인이 우경화란 용어를 무분별하게 써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는 아직 우익과 좌익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현재 휴전 상태이고 남남 간에도 ‘우익 보수’, ‘좌익 진보’의 편가르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한국인의 시각을 감안할 때, 과거사ㆍ위안부ㆍ독도 문제에서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고 비난조로 말하면, 일본인들이 거꾸로 ‘그럼 좌경화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비난 발언은 간단히 논파되고 만다. 아직도 한국인의 정서는 우익과 좌익을 떠올릴 때 먼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떠올린다. 외국의 표현이 무엇이든 한국인은 한국인 정서와 주변 환경에 맞는 용어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 우익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부각시키려고 ‘우익’ ‘우경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우리가 덩달아 일본의 국수주의와 선민(選民)주의 태도를 우경화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일본인은 겉으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국민성을 갖고 있다. ‘보통국가화’, ‘역사적 수정주의’, ‘적극적 평화주의’ 용어는 일본이 본심을 감춘 채 군사대국화를 꿈꾸며 만들어낸 이상한 용어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일본 언론이나 우익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직역해 사용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일본만큼 민족의식이 강한 국가도 드물다. 섬나라인 탓에 타민족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수많은 태풍과 지진 극복 과정에서 생긴 선민의식을 내세워 천황 중심의 민족주의 사상을 굳건하게 다졌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스스로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고, 2차 대전에서 자신들이 침략한 국가들을 자극할 뿐 아니라, 일본의 본심을 드러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대신 일본은 ‘내셔널리즘’으로 자신들의 성향을 포장한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은 국가주의, 국민주의, 민족주의 등이 포함돼 있다. 영어의 그늘에서 언어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여 우리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선민주의적 정치성향을 꼭집어 ‘민족주의’라고 표현해야 한다. 실제 일본의 정치성향은 구체적으론 ‘배타적 민족주의’, ‘회귀적 민족주의’에 해당하는데, 일단 ‘우경화’보다는 ‘민족주의’가 적합하다. 물론 반 사회주의ㆍ공산주의 활동을 할 경우 우경화라고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 참배 지지활동, 혐한론(嫌韓論),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인종차별적 증오연설) 등을 우경화로 지칭하는 것은 문제다.
아베 정권의 질주나, 질주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한일관계 개선에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양국 간 ‘불편한 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일본의 정치성향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일본의 현 정치 상황을 지칭하는 용어의 정확한 사용과 표현이 중요하다. 좌ㆍ우익의 이념 대립을 오랫동안 겪어온 한국인 입장에서 일본의 현 상황을 부적절한 용어로 이해하는 것은 혼란을 자초할 뿐이다. 한국인 관점에서 보다 이해하기 쉽고 현실적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박성황 한국외대 외래교수ㆍ전 주일대사관 공사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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