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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갤] ‘엄마의 호수’는 어쩌다 ‘공포의 호수’가 됐나

입력
2018.07.01 11:00
수정
2018.07.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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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현 비와호 전경. 플리커
일본 시가현 비와호 전경. 플리커

월척을 기대한 두 남성이 포착한 건 물고기가 아니었다.

하얗고, 기다란 그것은 분명히 시신이었다. A씨는 110(일본 경찰)에 전화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다리 같은 게 비와호 연안에 있습니다.” 2008년 5월 17일 오전 5시 40분쯤. 일본 시가(滋賀)현 비와(琵琶)호에서 토막 난 시신의 오른쪽 다리가 발견됐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였고, 발은 없었다. 비와호의 별명은 ‘엄마의 호수(Mother Lake)’였다. 야생 동식물이 풍부하고, 인근 도시들의 취수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신 발견과 함께 ‘엄마의 호수’는 ‘공포의 호수’로 탈바꿈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토막 난 시신… 범인은 면식범?

경찰은 현장에서 2.5㎞ 떨어진 호숫가에서 왼쪽 다리를 추가로 찾아냈다. 부위는 허벅지부터 발목까지로, 앞선 것과 같았다. 시신은 마치 경찰과 숨바꼭질하듯 단번에 모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달 간 5번에 걸쳐 부위별로 발견됐다. 5월 20일에 머리가, 다음 날인 21일엔 왼발이 발견됐다. 왼손과 오른손은 한 달 뒤인 6월 22~23일에 발견됐다. 몸통과 오른발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칼이나 톱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추정됐다. 시신 절단면이 깨끗했다. 사람 뼈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웬만한 칼이나 톱으로는 잘리지 않는다. 자른다 해도 뼈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남는다. 그러나 비와호 시신은 달랐다. 마치 자를 대고 자른 듯 깔끔했다. 크게 두 가지 추정이 가능했다. 범인이 도축업자 등 평소 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거나, 또는 이게 ‘첫 번째’ 살인이 아니거나. 후자의 경우라면 추가 피해자가 존재할 확률도 고려해야 했다.

면식범 소행일 가능성도 높았다. 시신 훼손은 대부분 유기나 은폐가 목적이다. 물론 조직폭력배 등 범죄집단에서 배신한 조직원 등의 시신을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다. 만약 유기, 은폐가 유일한 목적이라면 범인과 피해자는 가까운 사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자 신원이 밝혀지면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될 공산이 높기 때문에 시신을 없앤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 과정의 8할이 시신 신원 확인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였다.

조사 결과, 시신은 남성, 연령은 30~50대로 추정됐다. 사인은 질식사. 목이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신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먼저 왼쪽 눈가에 뾰루지가 있었다. 치아 상태도 좋지 않았다. 앞니 4개가 없었다. 코와 턱뼈엔 예리한 물체로 깎인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혈액형은 O형이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거의 백발에 가까웠다. 피해자는 4월이나 5월 초에 사망한 뒤 비와호에 버려진 것으로 의심됐다.

피해자 몽타주가 담긴 전단지. 시가현 경찰서 홈페이지
피해자 몽타주가 담긴 전단지. 시가현 경찰서 홈페이지

탐문 시작… 300건 넘는 제보 들어왔지만

경찰은 시신의 이 같은 특징을 토대로 제작한 몽타주 1만 장을 전국에 배포했다. 피해자가 일용직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지역의 건축 근로자 숙소 250곳을 상대로 탐문을 진행했다. 몽타주와 생김새가 비슷한 가출ㆍ실종자 1,700여명에 대한 신원 조회도 실시했다. 경마장, 경륜장 등 일용직 근로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를 찾아 피해자 신원을 수소문했다.

“수사원들의 신발바닥은 문자 그대로 닳아 없어졌고, 수사 차량의 타이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마모돼 갔습니다.” 한 경찰 간부가 2011년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그런데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좀체 잡히지 않았다. 사건이 언론의 관심을 끌며 관련 제보가 쏟아졌지만,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 오히려 허위 신고만 잇따랐다. 2008년 7월엔 한 여성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범인으로 신고했다. 거의 처음 용의자가 특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여성은 남친과 싸우고 홧김에 거짓 신고를 한 것이었다. 여성은 허위신고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제보는 해가 갈수록 줄었다. 경찰은 2009년 해당 사건에 ‘수사 특별 보장금 제도’를 적용했다.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일본 경시청은 2007년부터 경시청 지정 강력사건과 관련해 유력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최대 300만 엔(약 3,022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비와코 사건에 걸린 현상금은 300만 엔. 경시청이 내걸 수 있는 최고 금액이었다. 그만큼 경찰은 제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신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끝까지 간다

일본은 2010년 살인 등 중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일본 의회는 2010년 4월 살인 등 12가지 중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강간치사죄 등 최고형이 무기징역인 범죄의 공소시효를 15년에서 30년으로 늘리는 내용 등이 담긴 형사소송법,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우리나라보다 5년 더 빨랐다.

폐지 여론은 시민단체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 모임’이 주도했다. 2009년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 피해 유족 20여명이 중심이 돼 설립된 이 단체는 “흉악범 단죄에는 시한이 없다”고 주장하며 여론에 불을 붙였다. 실제 피해자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국민들도 움직였다.

비와호 사건도 공소시효 폐지 덕을 톡톡히 봤다. 원래대로라면 2023년 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시효 폐지로 ‘기한 없는’ 수사가 가능해졌다. 시가현 경찰은 사건 10주기를 맞은 지난 5월 17일 아웃렛 등 유동 인구가 많은 대형 매장을 찾아 새로 만든 몽타주 포스터 3,000장을 배포하며 제보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산케이신문에 “10년이 지났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에 전력으로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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