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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마셜 플랜(12.31)

입력
2018.12.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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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오늘 마셜플랜이 성공리에 종료됐다. 그 주역인 조지 마셜은 그 무렵 적과 내통한 사기꾼이란 비난을 받았다.
1951년 오늘 마셜플랜이 성공리에 종료됐다. 그 주역인 조지 마셜은 그 무렵 적과 내통한 사기꾼이란 비난을 받았다.

전후 유럽 4개년 부흥계획, 즉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 1948년 시작돼 51년 12월 31일 끝났다. 전장이었던 유럽 전역의 산업 인프라는 전쟁 전의 30% 수준에도 못 미칠 만큼 황폐화했고, 경제시스템은 거의 마비 상태였다. 시민들은 노동의 기회는커녕 기초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반면 미국은 전쟁 특수로 세계 산업생산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으로선 러시아와 동유럽 소비에트 블록의 서유럽 영향력을 차단하고 건강한 시장을 형성해야 했다. 유럽의 회생과 안정이 급선무였다.

2차대전 미영 합동참모본부장이던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George Marshall)은 47년 국무장관이 된 뒤 ‘유럽부흥계획’을 제안, 130억 달러(현재 가치 약 1,3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유럽 각국에 원조했다. 영국 33억 달러, 프랑스 23억 달러, 서독 14억5,000만 달러…, 프랑코 체제의 스페인과 중립노선의 핀란드를 제외한 모든 서남 유럽 국가가 그 혜택으로 경제 재건과 통합유럽(나아가 EU)의 기틀을 다졌다. 마셜은 195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2차 대전 군 수뇌부로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 정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전후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특별고문으로 중국 국공 내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중국의 공산화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50년대 초 매카시즘 진영의 의회 극우반공주의자들은 “적과 내통한 사기꾼”이라는 식의 격렬한 어조로 그를 비난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51년 건강 악화로 퇴임한 마셜은 당시 은퇴한 정치인이었고, 그를 변호할 만한 정계 친구들도 대부분 그에게 등을 돌렸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그들 중 하나였다. 52년 대통령 선거운동 중이던 아이젠하워는 참모들의 조언을 좇아 자신의 연설문에 포함됐던 마샬에 대한 헌사를 삭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셜은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실망감이나 분노를 표현한 적이 없었고, 메카시 등의 비난에 대해서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다.

다만 트루먼은 53년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지난 30여 년 국가에 가장 기여한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마셜을 꼽으며, “내 생애를 통틀어 그보다 뛰어난 행정가도, 그보다 탁월한 군사문제 전문가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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