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3>칠채 윈난 인문풍광 ③사등촌
윈난은 차마고도(茶馬古道)로 말방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중국 CCTV가 ‘차마고도 고진행’에서 성황이던 마을 8곳을 소개했는데, 남북으로 270km에 이르는 다리바이족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의 마을이 5곳이나 포함됐다. 웨이산(巍山)을 비롯해 시저우(喜洲), 펑위(鳳羽), 뉴제(牛街), 샤시(沙溪)다. 남조국과 대리국을 세운 바이족은 윈난 서북의 터줏대감이었다.
펑위와 샤시에 있는 고진을 찾아간다. 펑위는 다리고성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며 행정구역으로 진(鎭)이다. 2010년부터 국가문물국이 선정해 보호하는 역사문화 명진(名鎭)이다. 중국은 2003년부터 7차에 걸쳐 명진 312곳, 명촌 487곳을 선정, 현재 799곳의 오래된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윈난에서는 펑위와 샤시를 비롯 명진 11곳과 성자촌, 동연화촌 등 명촌 11곳이 포함됐다.
펑위고진은 전체 인구 3만여 명 중 바이족이 98%가 넘는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선다. 한가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100m 밖부터 인파를 헤치느라 힘이 다 빠질 정도다. 매주 화요일마다 장이 열리는 줄 미처 몰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민이 엄청나게 많다. 농업에 주로 종사하는 43개의 민족 부락민 대부분이 모인 듯하다. 차마고도에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역참이었다.
광주리를 메고 나온 할머니가 유난히 많다. 광주리 위에 나무판자를 무겁게 이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다. 손자 손녀를 업고 나온 할머니는 모두 표정이 해맑다. 아빠의 목마를 탄 아이들은 신났다. 엄마 손 잡고 나온 아이는 자기 키만큼 긴 풍선을 메고 있다. 마오쩌둥 배지를 단 할머니는 환하게 미소 짓는다. 장날 표정은 어른이나 아이나 명랑해 보여서 좋다. 여행 중에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러 일부러라도 시장에 가는데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니 신난다. 이국적인 풍광까지 담은 민족 마을이라 더욱더 보기 좋다. 여행 온 사람에게 미소를 선물하는 바이족 고진이다.
펑위소학 정문에 아이 둘이 앉아 있다. 장을 본 물건을 지키라는 엄마를 기다리는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이 나오고 은행나무가 하늘로 솟구쳐 자라고 있다. 아치형 문이 양쪽에 있다. 왼쪽 경업낙군(敬業樂群)은 ‘학업에 열중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예기’에서 인용한 문구다. 오른쪽에는 ‘예와 의는 군자가 출입하는 문이며 걸어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예문의로(禮門義路)가 지키고 있다. ‘맹자’에 나온다.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글귀다. 봉긋하고 담백한 아치형 문과도 어울린다. 군자처럼 들어가 볼까나.
옛날에는 서원이었다. 2층에 펑샹서원(鳳翔書院) 편액이 붙은 반듯한 건물이다. 공자 사당인 문묘의 대성전으로 청나라 옹정제 시대인 1726년에 처음 건축됐다. 가운데 도리춘풍(桃李春風) 글자는 남송사대가로 시인이자 학자인 양만리의 8행 7언 율시 ‘송유동자(送劉童子)’에 나온다. 7행 장성내주삼천독(长成来奏三千牍’)은 황제에게 오랫동안 상소를 올리는 신하로 성장하라는 구절이다. 이어 8행 도리춘풍관집영(桃李春風冠集英)으로 맺는다. 문하생을 상징하는 도리는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인 춘풍을 받아 관직에 올라 재능을 꽃피우라는 훈육이다.
차마고도 역참이자 문묵(文墨)의 고향이라 하더니 정말 풋풋한 인문의 향기가 풍긴다. 담벼락에 적힌 덩샤오핑의 교육목표나 후진타오의 교육 방침이 풍기는 고루함을 조금 참아본다. 사당이 서원으로, 다시 학교로 300여년 이어온 배움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밖은 시장 바닥이라 시끄러운데 방학이라 학생이 없어서 한가롭게 구경한 셈이다. ‘봉황이 죽은 후 우화등선(羽化登仙)’한 마을이라 달라도 다르다.
골목을 따라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간다. 재봉틀 돌리는 할아버지, 등짐 지고 가는 할머니도 보인다. 과자 파는 아주머니, 영정 사진 인쇄하는 아저씨도 보인다. 좌판에는 약재도 팔고 DVD도 판다.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도 보인다. 오지 구석까지 한류 흔적은 있다. 벽마다 구호가 잔뜩 적혀 있고 공고와 통지가 덕지덕지 붙은 벽도 촌 동네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직선거리 35km,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샤시고진이 있다. 그런데 가파른 산에 가로막혀 국도를 타고 한참 돌아가면 거의 두 시간이 걸린다. 펑위와 더불어 CCTV에 소개된 차마고진이자 역사문화 명진이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펑위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외국인도 즐겨 찾으니 카페와 객잔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에 말 두 필과 마부 조각이 반겨준다. 바이족 마을 사등촌(寺登村) 표지석도 보인다. 사등가(寺登街)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다. 바이족 말로 등(登)은 지방(地方)이며 가(街)는 집시(集市), 즉 시장이다. 한때 마방의 천당이라 불리던 촌락이다. 역참의 마점(馬店)이 많아 그렇게 불렸다. 마바리꾼의 객줏집이던 마점은 이제 현대화된 객잔으로 탈바꿈했다.
돌길을 따라가면 사등가의 사찰인 흥교사(興教寺)에 이른다. 1414년 명나라 영락제 때 처음 세웠다. 웅장하게 생긴 천왕 둘이 정문을 지킨다. 말과 함께 이동하는 마바리꾼은 석가모니나 관음보살을 향해 향을 피우고 봉공을 했으리라. 산 넘고 강 건너 피와 땀으로 얼룩진 길을 가는 이에게 아마도 위로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 시절의 오매불망이 사라져 평범한 사찰일 뿐이다.
보살보다 더 큰 안식을 주는 선물은 바로 사찰 앞에 있다. 촌구석에 과연 이런 멋진 무대가 있었구나 놀란다. 사찰과 무대는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저녁이면 북과 징, 피리 소리에 맞춰 공연을 봤을 터, 잠시나마 기나긴 행군으로 인한 고난을 녹이고도 남았다. 무대가 열리는 2층 뒤로 3층 높이의 누각이 덧붙어 있다. 무대 하나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하며 겹겹이 연결된 누각이다. 화재를 막아주는 오어(鰲魚)가 중심을 잡았다. 힘차게 뻗은 지붕에는 새와 말이 쌍을 이뤄 앞뒤로 서서 하늘을 향한다.
이 공간을 사방가(四方街)라 부른다. 사방팔방으로 열린 넓은 광장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윈난 일대 고성이나 마을 중심지는 모두 사방가다. 동채문으로 향하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지붕에서 혀를 내밀고 있다. 고양이만 날렵한 줄 알았는데 강아지는 왜 지붕에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밖으로 나서니 말 다섯 필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도 된다. 다시 사방가로 돌아오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말이 호객 중이다.
말을 세는 단위가 왜 필(匹)인지 궁금해진다. 필은 상대와 어울린다는 필적(匹敵), 배우자를 뜻하는 배필(配匹), 국가 흥망과 연결해 필부유책(匹夫有責) 등에 쓰인다. 어느 낱말에도 말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유가의 관점에서 고대 일화나 교훈을 엮은 ‘한시외전’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안회와 노동산(태산)에 올랐다. 쾌청한 하늘이라 멀리 쑤저우 서문까지 보였다고 한다. 직선으로 600km가 넘는 거리니 심한 과장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문 앞에 하얀 물건이 보이는지 묻자 ‘명주 한 필, 그 앞에는 쪽’이라 했다. 공자는 ‘백마가 갈대 꼴을 먹는 중’이라고 반박했다. 덧붙이길 햇빛이 내리비치면 말 그림자 길이가 한 필이라고 알려준다. 옷감 한 필은 사장(四丈)으로 대략 13m다.
북송 학자 조영치는 ‘후청록’에 위의 공자 이야기를 옮겼다. 군자를 상징하고 필적하기에 양마(良馬)를 마필(馬匹)이라 부른다고 했다. 속설도 꽤 모았다. 말이 밤에 달릴 때 대략 한 필 앞인 13m를 볼 수 있으며 말이 죽으면 일필백(一匹帛), 즉 비단 한 필에 판다는 유래도 전한다. 춘추시대 제후는 서로 승마속백(乘馬束帛)을 선물했다. 승마는 마차와 네 필 말을 묶어 일승이라 하고, 속백은 비단 다섯 필 한 묶음을 말한다. 그래서 말과 비단은 서로 같은 셈 단위를 쓰게 됐다고 했으니 조영치의 공로가 크다.
말 뒤로 보이는 카페가 여유롭다. 그런데 벽면의 구호는 급박한 요구 같다. ‘중국은 부강(富强), 민족은 번창(興旺), 인구는 억제(控制)’라니 인구 증가를 염려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담백한 담벼락을 강렬하게 만든 구호 아래 현대적 감각의 카페가 섞여 차마고진 분위기가 조화롭게 느껴진다. 날씬한 아가씨 둘이 걸어가는 길에 푸얼징덴(普洱經典)과 샤관퉈차(下关沱茶) 간판이 선명하다. 징덴은 품격이 있다는 의미니 좋은 푸얼차(보이차)를 마실 수 있다는 광고다. 샤관은 다리(大里) 주 정부가 있는 도시다. 곧 다리를 뜻한다. 퉈차는 운반을 쉽게 하려고 안을 오목하게, 밖은 볼록하게 만든 푸얼차를 말한다. 아주 크게 만들 수도 있지만 엄지손가락처럼 작은 크기의 퉈차는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에 편리하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풍성한 촌락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많다. 사등촌도 화폭에 담기 안성맞춤이다. 누각 주위에 나란히 앉은 학생들은 빨강, 녹색, 보라의 주름치마를 입은 바이족 아주머니를 담으려는 듯하다. 남채문으로 가는 골목에도 화폭을 펼치고 있다.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며 건물과 나무를 그리는지도 모른다. 안팎으로 객잔이나 식당이 많다. 객잔 이름도 창의적이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 영어가 득세다. 청수소원(青樹小院)은 Evergreen tree Yard로 표기했다. 귀구(歸究)라는 식당은 Hungry Buddha다. 귀구는 부사로 ‘결국’이란 말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에 대한 추구’라 할 수 있다. 네팔 식당 이름과 비슷해서 혹시나 해서 찾아갔다. 그냥 깔끔한 중국식당이다. 결국 주인은 불교도이거나 네팔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싶다.
샤시구쭝마덴(沙溪古宗馬店)이란 간판이 보인다. 차마고도 역참에서 말과 마바리꾼이 숙식을 해결하던 장소가 마점이다. 차마고진에서는 객잔이나 호텔보다 훨씬 정겨운 말이 아닌가? 샤시는 지명이고, ‘종’은 티베트 말로 성(城)이니 고종은 고성이다. 사등촌 마점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른 마바리꾼은 험준한 산을 넘어 티베트로 향한다. 지금은 그저 흔적과 기록으로만 남은 차마고도를 따라, 천년 세월을 걷는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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