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북한의 ‘화력 타격 훈련’ 당일(4일) 오전 10시 이후 탄도미사일로 의심되는 발사체가 추가 발사됐다는 사실을 평소와 달리 제때 공개하지 않아 은폐 의혹을 자초했다. 도발과의 경계선 근처까지 시위의 수위를 끌어올려 긴장과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도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인지 여부는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군 사정에 밝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6일 “이제껏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거나 국제 제재가 가해진 적이 없다”고 했다. 비핵화 협상 판을 깰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호들갑스러운 시비로 오도된 이목이 ‘뭘 쐈냐’에 온통 쏠리는 통에 정작 주목돼야 할 의문이 소홀히 다뤄져 버렸다는 게 기자 생각이다. ‘왜 쐈냐’다.
현재 승기는 미국이 잡은 상황이다. 북한은 진퇴양난이다. 협상 상대방에게 선물을 준답시고 호기롭게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 유예)을 선언한 게 자승자박이 됐고 믿는 구석이 뭔지 노골적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속내를 드러냈다가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더 이상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말자고 합의해 놨으니 남측을 인질로 잡지도 못한다.
그래서 하릴없이 꺼내 든 고육책이 자력갱생이다. 이번 발사에도 수세의 흔적이 뚜렷하다는 게 정보당국 분석이다. ‘미국이 적대 행위를 거두지 않아도 우리 군비(軍備) 수준이 스스로 보호할 정도는 되니 걱정 말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자’는 대내 독려의 성격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대미 항의 못지않다는 것이다.
지금 한미의 신중한 태도는 판을 흔들어 보려는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일 듯하다. 강한 제재로 최대한 압박하면서 대화(관여)의 창은 열어두겠다는 미 정부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북한의 이번 무력 과시가 초조감의 방증이라면 과민하게 반응하고 몰아붙였다가 오히려 북한의 탈선을 부추길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의외로 잘 버텨 교착 국면이 길어져도 문제다. 기껏 만들어놓은 대화의 동력이 바닥날 수 있어서다. 거꾸로 자칫 정권이 예상보다 빨리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건 더 위험하다. 핵이 누구 손에 흘러 들어갈지 알 수 없다. 상황 악화를 막으면서 동시에 진전되도록 촉진하려면 고도로 전략적인 접근이 긴요하다.
이렇게 첨예한 시기에 도발이 본능이니 하며 북한을 짐승 취급하고 왜 눈치를 보느냐며 정부까지 싸잡아 타박하는 게 결과를 얻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반정부 보수 정서에 불을 붙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불순한 정략적 선동으로밖에 안 보인다. 더욱이 짐승에게도 채찍과 더불어 필요한 게 당근이다. 욕망 자극이 행동 채근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북한 정권의 제재 완화 집착이 시장화 확산에 따른 체제 동요 걱정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압박만 비핵화 지렛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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