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와상(臥牀ㆍ침대에 항상 누워 있는 환자) 할머니가 틀니에서 피가 나고 아프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돌보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등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틀니 사용자용 구강관리법 자료가 있을까요?”
“12세 지적장애 아동이 노력 끝에 기저귀를 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화장실 바닥에서 볼일을 보고 변기에 앉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변기에 앉아 대소변을 보는 습관을 들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애공감연구회 ‘함께라온’ 단톡방에 최근 올라왔던 질문이다. 단톡방에 이런 질문이 올라오면 50여명의 멤버들은 서로 자신의 경험이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정보와 지식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했더니 도움이 되더라, 그 자료는 내가 보내 주겠다, 누가 그 분야의 전문가다... 마치 ‘서로 돕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사람들’ 같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 밤낮 없이 머리를 맞대는 이들의 단톡방에서 ‘눈팅’을 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치유된다. 세상엔 혐오와 질시, 우울한 뉴스가 가득하고 단톡방에는 짜증을 유발하는 ‘받은글’과 ‘좋은글’, 가짜뉴스가 넘치는데, 함께라온의 단톡방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 속 우물 같다.
함께라온은 의료나 돌봄의 필요가 큰데도 실제 의료 이용 기회는 동등하지 않은 장애인의 건강권을 위해 의사 간호사 치과위생사 작업치료사 등 각 분야 의료인과 장애 당사자 및 부모, 학자, 활동가 등이 서로 돕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지난해 5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의료사협연합회)에서 주최한 8주에 걸친 장애인 건강 세미나에 참여한 이들 10여명이 “세미나가 끝나고도 계속 공부하는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며 즉석에서 결성했다.
작업치료사 이준수씨가 단톡방과 ‘수다회’라는 이름의 연구모임 운영을 주도한 가운데 1년 반이 지나자 멤버도 50명 정도로 불어났다. 11월 16일에는 ‘장애인 커뮤니티케어 현장 활동 이야기’라는 주제로 자체 세미나도 연다.
함께라온 단톡방에서는 이처럼 의료의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이들이나 단체의 다양한 활동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출범한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닌 의료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ㆍ공공적 가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간의료기관들의 연합체다. 우리나라 의료가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해 발전해 오면서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소외된 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공공의료의 역할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 연합회에 소속된 병ㆍ의원이나 약국, 의료사협 등은 민간의료기관인데도 공공이 담당해야 할 영역에 관심을 갖는다.
의료 현장에서 소외된 이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이들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찾아낸 방법은 종종 실제 정책이 되기도 한다. 의료뿐 아니라 복지, 돌봄 문제까지 사람 중심으로 해결하는 방법인 지역사회 통합 돌봄, ‘커뮤니티 케어’ 역시 이런 분들이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연구해 이미 현장에서 해 오고 있었다.
집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도 이렇게 생겨났다. ‘3분 진료’를 수십 번 하고도 남을 시간을 들여 왕진을 다녀오는 점을 고려하면 수가가 지나치게 낮지만, 의료사협 의사들은 동네 곳곳의 거동 불편 환자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간다. 보편적인 방문의료 수가를 별도로 책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정부 방침이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면 장애등급을 받지 못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이 느리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들 덕분이다.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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