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착취한다는 주장은 미국 등 서방의 비방이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올바르게 발전하고 있다.”
6일 ‘중국의 대(對)아프리카 전략’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 정부 주최 ‘서울 아프리카 대화’ 행사의 연단에 선 허원핑(賀文萍) 중국사회과학원(CASS) 서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IWAAS) 교수의 강연은 거침없었다. 아프리카 고객을 불러모으기 위한 프로모션 같았다. 다른 연사들이 눈치를 주든 말든, 시간 제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려는 14억명이 경쟁하는 중국 사회에서 어쩌면 사치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토한 열변의 내용은 기자가 과문해서인지 낯설었다. 늘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고 오만한 ‘세상의 중심’이 중국 아니었는가. “왜 개발도상국에 불과한 우리를 괴롭히느냐.” 청중을 상대로 동정을 호소하는 약자연(然)은 분명 생소한 중국인의 모습이었다.
공교롭게 행사 직전 한국을 찾아 방한 기간 내내 미국을 작심 비난하다 돌아간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발언들이 포개졌다. “지역ㆍ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우리의 정당한 발전권도 해치고 있다”고, “자기 힘만 믿고 남에게 강요하는 행태에,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고 그는 미국을 맹공했다. “중국 억제의 배후에는 이데올로기 편견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초청국의 동맹을 욕하는 왕 부장의 무례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건 공포인 듯하다. 자존심이나 체면을 챙길 여유가 없을 정도로 중국은 미국이 두려운 것이다. 위대한 과거를 재연하고 싶다는 욕망이 왜 없겠나. 다만 패권국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게 중국의 현실 인식이지 싶다. 두들겨 맞아보니 이른 굴기(崛起)가 후회됐을 법하다.
미국에 군사력으로 맞서려면 일단 경제력부터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추세를 감안할 때 시간은 중국 편이다. 10년쯤 뒤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하리라고들 한다.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설 때까지는 다시 빛을 감추고(韜光ㆍ도광) 와신상담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역내 평화가 긴요하다. 중국의 단기 목표는 우선 동북아시아 한중일 3국의 ‘평화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변수는 중국의 오판이다.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에 등장해 미중 양강 시대의 화두가 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국의 부상이 야기한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이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을 단속하려는 가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거꾸로 중국을 ‘선제 도발’의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도 크다는 데 있다.
본래 중국은 팽창 야심이 큰 나라다. 오랜 기간 두려워하기보다 두려움을 주는 쪽이었다. 먼 미국을 끌어들여 가까운 중국에 대적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은 한국 입장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더구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며 북한을 끌어당겨 친미(親美)로 만들려 시도하는 요즘 상황은 중국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나 중거리 미사일은 물론 주한미군까지 중국에게는 눈엣가시일 게 분명하다.
6ㆍ25전쟁 정전 직후인 1953년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은 뒤 한국은 미국의 이익에 맞추려 노력했다. 미국에게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이게 주한미군 성역화 등 맹목적 대미 의존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이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방위가 명분인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도리어 한국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미 미국 대신 중국이 가하는 사드 보복의 고통을 견디고 있지 않나. 미국에게 “오지 말라”고 해야 할 나라가 비단 중국만이 아닐지 모른다.
권경성 정치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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