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라면 최악의 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베네치아나 섭씨 42.6도를 기록한 파리의 폭염,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중남미가 떠오를 것이다. 사라져가는 북극 빙하나 불타는 아마존 역시 기후 위기의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머지않아 일부 지역에서 나타났던 기후 위기의 실체를 이제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겪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네이처에는 기후 위기가 되돌릴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이미 넘겼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실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기후 위기는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까?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갑자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국내외의 동향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이나 대규모 자연재해와 같은 자연현상보다 먼저 경제와 산업의 위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마드리드에서는 제2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5)가 열리고 있다. 1995년 처음 시작된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는 1997년의 교토의정서와 2015년의 파리협정을 채택한 바 있다.
특히 195개국이 서명한 제21차 회의의 파리협정은 신기후체제를 열었다. 이 협정은 공동의 장기 목표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나아가 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칠레에서 열기로 했다가 스페인으로 옮겨진 이번 25차 회의에서는 국제탄소시장 운영 지침 타결 여부가 최대 쟁점이다.
앞으로 기후 협상은 무역이나 시장과 연관된 사안들이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국제 비난을 감수하면서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겠다고 한 것이 기후 위기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부담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과감한 전환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지난달 28일 유럽의회는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유럽 의회의 기후 비상사태 선언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 중의 하나는 탄소국경세 도입 제안이다. 기후 관련 요구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의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지난 9월 유엔 기후정상회담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무역정책에 기후변화대책을 반영해야 한다면서 “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고, 다른 나라에 오염물질 배출 공장을 짓는 경제 계획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후정책을 무역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커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기후 위기 대응 속도를 보면 소위 ‘기후악당국가’에 대한 무역 제재는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나 기업들에는 치명적인 제재가 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산업분야에서 느끼고 있는 기후위기는 예상외로 심각하다. 벌써부터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 기업들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제품만을 납품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RE100을 달성할 수 없는 기업들은 수출을 포기하거나 생산공장을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른다.
최근에 국제전문가 집단이 계속 발표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 통계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2017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배출량이 7억톤을 넘겼고, 2018년에는 7억2000만톤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7위이다. 우리 전력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곧 우리보다 GDP가 2배가 넘는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빨리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기후 위기는 수출기업과 주력산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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