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였던 학예연구실장의 직급은 그대로다.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미술계가 뿔났다. 발단은 새해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이 발표한 ‘학예연구직 38명의 정규직화’다.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규직화보다 제대로 된 권한을 줘야 미술관이 미술관다워진다는 오랜 요구가 거부당했다는 데 있다.
14일 서울 삼청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직제개편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미술계 인사들은 성토를 이어 갔다.
발제자로 나선 정준모 전 국현 학예연구실장은 “국현 개관 이후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직제 개편 때마다 일반행정직이 올 수 있는 기획운영단장, 사무국장 자리만 승급됐고 학예연구실장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미술전문가 자리인 학예연구실장은 전문임기제 가급으로, 공무원 직급상 4급이다. 이에 비해 행정직이 차지하는 기획운영단장은 관장과 같은 2급이다. 정 전 실장은 “이런 구조는 기형적”이라면서 “관장을 차관급으로 올리고, 학예연구실장은 최소한 기획운영단장과 같은 직급으로 승격시켜야 전문 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실장은 미술관의 전문화를 위해 아예 ‘학예연구직 종신(Tenure)제도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기획운영단의 비대한 권한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기획운영단이 인사와 예산을 총괄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술관을 장악한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태에선 누가 관장이 되더라도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규직화된 학예사 못지않게 무기계약직 신분에 머무르고 있는 미술관 내 전문 인력 문제도 거론됐다. 특히 아카이빙 작업을 맡는 아키비스트를 비롯해 미술관의 수복보존, 작품등록 등 전문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이 “월 180만원 수준의 봉급을 받으며 미술관의 유령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 평론가는 “38명 정규직화를 자랑하기보다 오랜 시간 다뤄지지도 못한 이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글ㆍ사진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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