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외적의 침략에 맞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민간 무장조직을 만든 의병(義兵) 전통이 있다. 대한제국 시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운 각지의 민병 역시 의병이라 불린다. 일본 측 통계에 따르면 1907~1910년 의병 15만여명이 봉기해 총 2,851회 일본 군대와 충돌했다.
□ 4ㆍ15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의병 정당’ ‘민병대 정당’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르는 이번 선거에서 비례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내세워 비례대표 선거에서만 20석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친여 인사들이 주도해 사실상의 더불어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민병두 의원은 “관병 싸움에서 도저히 안 되면 민병대가 나설 수 있는 것”이라고 했고, 이인영 원내대표는 위성정당 창당 주장에 “우리는 만들 수 없다”면서도 “의병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있겠느냐”고 했다.
□ 민주당 지도부는 그동안 “비례 위성정당은 꼼수 중의 꼼수, 한국 정치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불출마 의원들에게 미래한국당 이적을 권유한 황교안 통합당 대표를 정당법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최근 명분과 실리를 놓고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는 모습이다. “반칙을 보고도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라는 말이 나오더니, 급기야 지난해 선거제 패스트트랙 통과에 앞장섰던 민주당 핵심 인사 5인이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 모여 위성정당 창당 논의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으면 20점을 깔아두는 ‘접바둑’을 두는 거와 같다는 비유가 나온다. 이러면 제 아무리 프로 바둑기사라도 이기기 쉽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측면도 있는 만큼 ‘대국민 사기극’(진중권)이라는 비난을 듣는 게 억울할 법도 하다. 통합당의 과반 승리를 막으려면 실리를 따져야 한다는 찬성 측 논리에도 일리가 있지만 씁쓸함은 남는다. ‘내로남불’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허점 많은 선거제를 통과시킨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 경고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민주당이 뒤늦게 부산을 떨며 ‘의병’까지 호출하는 건 민망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저항한 의병의 대의를 당리당략과 같은 선상에 놓아서야 되겠는가.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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