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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코로나 세상에서도 사람이 그리워지는 이유

입력
2020.05.0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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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풍경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기후변화에 대한 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불과 3개월간 인간의 움직임이 멈추자 지구가 놀랄 만큼 다시 깨끗해졌다고 한다. 중국의 탄소 배출이 25% 이상 줄어들면서 정말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사라진 파란 하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국가적인 방역체계의 측면에서는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큼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서양의 속담처럼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가 늘어난 만큼 사회심리적으로 고립되면서 소위 ‘코로나 우울증(corona blue)’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언택트(untact)’란 ‘콘택트(contact: 접촉하다)’에서 부정의 의미인 ‘언(un-)’을 합성한 말로 이는 사람 간에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진 새로운 소비 경향을 표현하는 신조어이다. 왜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사재기 광풍이 없었는지에 대한 분석 중에 택배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과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명성에 걸맞게 온라인쇼핑이 늘 가능하다는 점을 뽑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재의 일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사람 간의 오프라인 만남이 줄어들고 언택트 사회가 성큼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이미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사람간의 소통 창구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런 현상은 더욱 더 활성화될 것이다. 굳이 만나지 않고도 충분한 의사 교환과 서로 간의 신뢰가 가능하다면 다행이련만 이런 SNS가 유발하는 부작용 중의 하나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더구나 이런 체계의 알고리즘은 본인의 선택을 더욱 강화하는 형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은 ‘좋아요’의 숫자가 많을수록 노출 빈도가 증가하고 유튜브는 ‘맞춤영상’이 작동하면서 비슷한 영상들을 계속해서 추천하는 식이다. 우리의 뇌는 짧고 간단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총체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언택트’로만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뇌가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지게 되고 잘못된 판단이나 선택을 했을 때 교정하는 피드백을 약화시킨다.

SNS의 또 다른 부작용은 익명성이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닉네임이란 가면을 쓴 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오프라인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글을 남기거나 말을 내뱉을 수 있다. 고립된 확증편향이 SNS와 결합하면 집단사고(group think)라는 형태로 왜곡될 수 있으며 무비판적인 획일성을 강조하고 반대 의견을 마녀사냥식으로 공격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우울증은 우리의 뇌가 과도한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한동안 버티다가 결국에는 무너지는 정신질환이다. 이럴 경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은 사람간의 관계를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휴식 기간이 지난 후에 뇌의 기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자극이 요구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너무 길어질수록 우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택트한 세상이 주는 편리함 속에서도 우리한테는 오프라인의 적당한 자극이 늘 필요하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에서도 사람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뇌가 사람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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