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겨울 어느 날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부분이 알 만한 문장 다섯 가지를 고른다면?’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애창곡처럼 '한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문장'이라고 이름 지을 것들을 말이다. 그런 문장들은 시기별로 달라진다. 광복 후의 '광복가'나 전쟁 중의 '전우야 잘 자라' 같은 노래 가사는 그 시절 누구나 불렀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문장' 첫 번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애송시를 꼽으라면 1위는 언제나 윤동주의 '서시'인데, 그 첫 문장이다. 왜 이 문장이 우리의 가슴에 그토록 메아리칠까? 그것은 겨레의 아픔과 함께한 윤동주라는 시인과 이 시가 지닌 고결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크게 보면 기독교 불교 유교가 공히 지향하는 깨끗한 마음과 통해서인 것 같다.
두 번째를 꼽으라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인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남녀 없이 이 문장을 좋아한다. 정유재란 때 우리 수군이 궤멸되자 선조는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에게 다시금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긴다. 하지만 며칠 후 '지휘할 수군이 없다면 권율을 돕도록 하라'고 한다. 하지만 충무공은 열두 척이 있음을 밝히며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사옵니다. 미천한 신(臣)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라고 보고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적선 333척을 격파하여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기적을 이룬 명량대첩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세 번째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니, 내(川)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라고 생각한다. 한글 최초의 시가집인 '용비어천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균형이 있으며 유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키워드는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인데, 각각 잡지의 제목으로도 쓰일 만큼 뜻이 깊고 정이 가는 말이다. 이 키워드를 보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끈기 있고 은근하며 심지가 굳은 마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네 번째는 '애국가'의 첫 구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 문장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을 아는 이는 없다. 그래도 그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프랑스와 미국의 국가를 들어보면 피가 튀고 화염이 날아가며 영국과 일본의 국가는 왕을 찬양한다. 하지만 애국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 얼마나 사랑하면 동해 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영원하기를 바랄까.
내가 꼽은 다섯째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이다. 우리에게 삶은 아득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것. 님이랑(알이랑) 함께 가야지만 가능한 것이라고 이 문장은 말한다.
올겨울 살아가는 일은 유독 어렵지만 우리가 바르고 꿋꿋하고 맑고 따뜻한 혼(魂)을 지닐 때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우리와 함께하는 이 문장들은 말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