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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

입력
2020.05.06 01:10
수정
2020.05.06 10:0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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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능한 정부를 꾸짖지 않는 일본 시민 사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잇따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와’(和)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무능한 정부를 강하게 꾸짖는 집단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잇따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와’(和)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무능한 정부를 강하게 꾸짖는 집단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일본의 시민들은 왜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시민의 힘으로 폭주하는 권력을 응징한 경험이 생생한 한국 사회에서 익히 나올 수 있는 궁금증이다.

신종 전염병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진단 검사를 늘리면 의료 붕괴가 되네 마네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질질 끌고 있다. ‘긴급 사태 선언’은 했지만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할 뿐 이렇다 할 방역 대책이 없어 불안감은 커질 뿐이다. 국가 원수가 한가롭게 애완견과 노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공분을 사는가 하면, 엄청난 국가 예산을 써서 지급한 천 마스크는 불량품이 속출한다. 게다가 이 마스크의 공급처는 정치권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정체 불명의 유령 회사란다.

이쯤 되면 시민의 인내심도 바닥날 만한데, 시민들이 정부를 꾸짖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일본의 시민들은 왜 무능하고 오만한 권력을 묵인하는 것일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성차별, 직장내 괴롭힘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집단 행동이 끊이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럽지만, 덕분에 사회적 과제가 공론화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시민들의 대규모 집단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혐한 시위’ 같은 인종차별적 집단 행동은 종종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막연한 배타주의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정치적인 이벤트에 가깝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 운동과 동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 일본에도 지금의 한국에 못지 않게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우렁차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마자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해서 대규모 반전 시위를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일이 잘 알려져 있다. 전국의 300여개 단체가 연대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 연합’(줄여서 ‘베평련’)이 주도한 시위에는 수백만명의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베평련’은 일본 정부에게 전쟁에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요구했을 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당당하게 전달했다. 1965년 11월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 1면에 일본 시민의 힘을 모은 ‘베평련’의 이름으로 “폭탄은 베트남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호쾌한 캐치프레이즈의 전면 광고가 게재될 정도였다. 무기력한 지금과는 전혀 딴판인 ‘데모의 시대’가 일본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반 세기 전의 역사일 뿐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 학생 운동의 주역들이 정치권으로 대거 진출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시민 운동을 이끌던 리더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데모의 시대’에 대한 기억의 끄트머리에는 급진 좌파 학생들의 과격한 무장 투쟁 (일명 ‘전공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남아 있다.

2017년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1968년전’은 일본 사회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를 조명한 전시회였다. 사진 김경화
2017년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1968년전’은 일본 사회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를 조명한 전시회였다. 사진 김경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짝 높아졌다가 시들해진 시민의 목소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짝 커지는 듯도 했다. 2011년에는 반원전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제법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2012년에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집권한 보수 정권의 노골적인 우경화를 비판하는 대학생과 지식인의 조직 행동이 잠깐 활발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터넷 공간의 시민 행동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시민의 집단 행동은 이래저래 난감한 주제이다. 건강한 시민 사회를 위해 권장해야 마땅하다는 원론적 입장도 있지만, ‘화합’ (‘和’라고 쓰고 일본어로 ‘와’라고 읽는다)을 최우선에 두는 분위기 속에서 모난 돌의 역할을 자청하는 부담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삼키지는 못하겠고 뱉기에는 아까운 ‘뜨거운 감자’ 같은 사안이다. 결국 “일상 속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한 시민”이라는 교과서적 역할론으로 무기력함을 정당화하기 일쑤이다.

한 일본인 동료는 일본 시민 사회가 활력이 없는 이유에 대해 “폭주하는 권력으로 인한 파탄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는 군사 독재,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력적 탄압 등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문제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에 비해 일본 사회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이 권력의 폭거를 피부로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반 세기 동안 대외 문제에 매달려 온 정치권과 시민 사회

일본인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제3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일본 사회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기 보다는, 곳곳에 산재한 모순이 ‘파탄적 상황’으로 표면화된 적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패전 이후 줄곧, 일본 사회는 어떻게 다시 국제 무대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주요 아젠다로 삼아왔다. 정부의 정책 과제도, 시민 사회의 비판 의식도 외교나 국제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다른 나라에 무력을 과시하려는 호전적인 시도 끝에 비참하게 20세기 전반을 마감한 패전국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일본 사회 내부의 모순과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방치되어 왔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과제로 치환하거나, 외교적 문제인 양 해결하려는 사고 방식도 자리잡았다. 그러다 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자는 식의 무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관심이 들끓는 ‘미투 운동’이나 정보의 온라인화 등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 시민 사회의 대응이 둔감하고, 심지어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일본 고유의 문화’ 라고 옹호하는 의아한 태도도 이런 경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파탄’이 일본 시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사회는 ‘파탄’을 경험하면서, 권력의 위험한 속성을 깨닫고 고통스럽게 과거와 결별한다. 한국만큼 파워풀한 집단 행동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를 활용해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온라인 데모’가 조용히 번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일본 사회가 건설적인 ‘파탄’을 경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치룬 중의원 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반 세기 이상 굳게 자리잡아 온 사상의 관습이 그리 쉽게 깨지겠는가 싶기도 하다. 어떤 쪽이든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일본 사회에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일본 사회가 내부의 모순과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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