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난으로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경제 위기 대응에 한국의 명운이 걸렸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현 민주당 집권세력에겐 정권재창출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대국민연설에서 꺼낸 ‘한국판 뉴딜’은 물론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는 정권 후반기 최대 역점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진영에겐 지금처럼 복지 이슈를 밀어붙일 천금 같은 기회가 흔치 않았다. 최근 만난 여권의 전략통은 3가지 측면에서 이를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여당 180석(열린민주당 3석을 포함할 경우)이란 놀랄만한 동력, 그리고 향후 2년 대선정국을 앞둔 조건”들이 그렇다.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고용이 안정적인 사람은 사회복지도 괜찮은 편이지만, 소득이 적고 고용도 불안한 사람들은 최악으로 몰리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특수고용직, 임시직, 일용직, 영세자영업자들을 고용보험 울타리 안에 묶어야 할 당위는 공감을 얻을 것이란 기대에다, 대선국면엔 이런 내셔널 어젠다에 대한 국민적 에너지가 모이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복지이슈가 대선의 핵심화두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미 여권의 차기 주자들은 복지논쟁에 뛰어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는 4개월여 코로나 전쟁을 치르며 ‘국민안전’이란 복지 현안을 매일 맞닥뜨리고 있다. 수도 방역을 지휘중인 박 시장은 나름 선방해왔다고 볼 수 있다. 대구 31번째 확진자로 비롯된 신천지발(發) 집단감염에도 방역당국은 사실 더 심각한 악몽이 닥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바로 2,500만명 인구가 몰린 서울·수도권이 뚫리는 경우다.
급기야 서울 구로콜센터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최근 이태원 클럽발 전국 전파도 터졌다. 그럼에도 상황이 최악엔 이르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만큼 서울의 행정력이 간단치 않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신속한 정보공개나 휴대폰 통신망을 이용한 추적 등 ‘K방역’의 몸통이 ‘S방역’(서울형 방역)임을 보여줬다. 국내 263명의 사망자(19일 0시 기준) 중 서울은 단 4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미 ‘기본소득’을 자신의 복지브랜드로 굳혔다. 성남시장 때 청년배당을 추진한 그는 지금 전 도민에게 10만원씩 주는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을 시행 중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매번 그가 꺼낸 아이디어를 정부가 따라서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지금 대선주자군은 이낙연,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까지 모조리 ‘비(非)문’들이다. 차기 경쟁이 친문 지지층 공략에 달려있는 것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계경쟁 당시 일찍부터 앞섰던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돌풍에 갑작스럽게 밀린 배경엔 ‘이인제 측이 햇볕정책 계승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때부터 노무현 후보 쪽으로 ‘연청’(DJ의 청년조직)의 대대적인 지원이 옮겨갔다고 증언하는 원로들이 많다. 현재대로 친문 대선주자가 계속 떠오르지 않는다면 친문진영이 과거 동교동계와 비슷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정체성을 누가 충실히 계승 발전시킬 지가 진영의 시대정신으로 변모하게 된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이 언급한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란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가 먹고 사는 걸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국민이 몰아준 기대를 저버렸던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만회할 시대적 사명감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최근 문 대통령의 ‘단계적’ 전국민 고용보험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미래담론에 올라탔다. 이명박, 오세훈에 비해 건설토건 업적이 취약한 그가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흐지부지된 소득주도 성장의 신기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차기 주자들의 복지구상을 지금부터 혹독하게 검증해야 한다.
박석원 지역사회부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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