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불능에 빠졌다. 일파만파로 번지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 관련 의혹을 보면서다. 윤 당선자는 누구였는가. 그의 발자국은 다 무엇이었는가. 확신에 찬듯한 사실의 조각, 반박, 규정, 논평이 쏟아지지만 어렴풋한 답에 우린 아직 가 닿지 못했다. 여러 배경 탓에 그는 일본군 위안부 인권 운동을 외롭게 이끌어오는 가운데 회계에 소홀했고, 의혹은 많은데 해명은 더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이 전 운동의 당위와 뿌리를 흔드는 것이어선 안 된다는 당위 정도에 겨우 공론은 모여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윤 당선자와 정의연 일원들이겠으나,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세상의 마음이 모두 모나고 뾰족한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마음들은 눈만 마주치면 제 나름의 난감하고 쓰린 심정, 나아가 판단 불능의 처지를 토로한다. 그 곤혹이 절정에 달하는 때는 ‘의혹제기=친일’의 주장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이런 거친 반응은 국회에서도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당선인 14인은 최근 입장문에서 이번 논란을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려는 부당한 공세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더 말문이 막혔던 것은 그 뒤에 이어진 문장이었다. “이번 공세는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훼손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국회에 이 말이 울려 퍼지는 동안, 메신저를 공격하며 진솔한 규명의 기회를 원천 차단하고 있는 쪽은 어디였을까.
이 당혹스러운 반응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는지를 전혀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일본 우익이나 국내 극우세력은 분명 이번 논란을 십분 악용하고 있다. 일부 의혹 제기 보도가 함량 미달이거나 악의적 왜곡이었다 볼 여지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쉽게 ‘모든 의혹은 정치적이며 무색한 것’으로 보기엔 상황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여러 해명은 번복됐고, 아직 나오지 않았고, 논란에 휩싸였다.
손쉽게 전선을 그어버리기엔, 모든 의혹제기를 적들의 것으로 규정하기엔, ‘일본군 위안부 인권 운동’의 상징성은 너무 엄중하다. 특히 제도권 정치로까지 이런 거친 전선을 끌고 들어오는 일의 여파는 크다. 청취하고 살펴보고 종합하고 봉합하고 시스템을 도모해야 할 정치인들마저 정제되지 않은 거친 전선으로 싸움에 임할 때, 무턱대고 선명할 때, 온갖 갈등은 대중 속을 부유한다. 온갖 과제는 미결 상태로 남겨진다.
최근 여의도를 떠나는 중진 의원들의 당부가 대체로 ‘선명성 경쟁에 빠지지 말아달라’는 메시지에 모이는 것은 그만큼 우려스러운 모습이 잦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원로들의 호소는 일관되다. “선명성 경쟁만 하던 뼈아픈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책임윤리가 절실하다”(원혜영 의원) “더 이상 시작부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문희상 국회의장)
물론 이런 신중함은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나 해명하는 쪽 모두에게 요구되는 윤리다. 30년 운동사와 윤 당선자의 전 생애, 온 가족을 향한 문제 제기가 폭발하고 있다. 여기에 답해야 할 의무는 윤 당선자 한 사람과 열악한 시민운동 환경을 견뎌온 소수의 책임자들에게 집중돼 있다. 그런데도 어떤 해명 요구에는 조급함도 느껴진다. 빨리 해명하고, 빨리 결론 내고, 빨리 사퇴하고, 빨리 내치라고 재촉한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모든 의혹 제기를 악으로만 치부하는 태도도, 머뭇거리지 말고 우선 항복부터 하라는 태도도 ‘위안부 인권 운동’의 명예를 지키는 데는 방해만 된다. 반드시 규명해야 실체적 진실 앞에 놓여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보다 진중하게 사실의 조각을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눈엔 느리고, 비겁하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선을 함부로 긋지 않는 것, 마구 참전하지 않는 것도 때론 책임이자 윤리다.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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