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나 사진 등 불법 성 착취물을 막기 위해 개정된 형법,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전기통신사업자법, 정보통신망 이용에 관한 법 등 소위 ‘n번방 방지법’들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불법 성 착취물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보는 행위도 처벌받게 됐으며 양형 기준도 올라갔다.
n번방 사건처럼 불법 성착취물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법을 강화하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법 적용의 오용과 남용이 일어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피해다.
개정된 전기통신사업자법과 정보통신망법은 포털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인터넷 사업자들이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제14조에서 규정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해 기술적이고 관리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했다.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앞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련 업체 등이 논의해 시행령에 반영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업체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법을 확대 적용하는 경우다. 불법 성 착취물이 아니어도 의심스럽거나 의혹 제기만으로 게시물 전체를 차단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핑계로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도 가능하다.
지금도 포털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괜한 기우라고 말할 수 없다. 현재 포털들은 법에 따라 청소년 유해물이나 다른 사람의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게시물의 경우 신고를 받으면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임시조치(블라인드)를 한다. 이 과정에서 게시자에게 왜 임시 조치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소명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청소년 유해물로 의심받으면 이의 신청을 해도 후속 절차 없이 삭제로 이어진다.
콘텐츠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기자와 통화한 방통심의위 관계자도 “포털들이 이의신청을 받은 뒤 후속 절차가 없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방통위에서 개선 조치를 조만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n번방 방지법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과 통화해 보니 의견이 엇갈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불법 콘텐츠 예방 의무를 지우면 게시 허가제나 이용자 감시가 필요해 허락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자유를 훼손한다”며 “국제인권기준의 하나인 정보매개자책임제한원리와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항에서 포털이 침해여부와 관계없이 누구의 요청만으로도 블라인드 처리를 할 수 있게 해 문제”라며 “이번 법 개정으로 수많은 합법 정보들이 더 쉽게 블라인드 처리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성 범죄나 성 차별의 해악을 고발하는 콘텐츠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공유되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강윤희 변호사는 다른 의견을 들려줬다. 강 변호사는 “더 큰 공익과 더 많은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라면 표현의 자유 일부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지금은 과거와 달리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며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의견도 많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댓글 조작, 가짜 뉴스의 범람 등을 고려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점을 바꿔 기술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은 시행령을 마련하는 방통위에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불법 성착취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면 공정한 이의 심사 절차도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n번방 범죄의 재발을 막으려면 사회 전반적인 성 격차 해소와 현실적인 성 교육 의무화 등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박 교수 의견처럼 예방을 위한 사회적, 제도적 노력도 따로 강구해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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