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에 안보위험 급상승 우려
정부는 평화체제 ‘희망사항’만 되풀이
북미 충돌 ‘제동 장치’ 재정비 절실
‘미중 신냉전’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일단 경제 문제에 맞춰져 있다. 이미 코로나19 충격 자체만으로도 공식 성장률 전망이 22년 만에 마이너스로 꺾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 책임’을 빌미로 화웨이 공급망 차단부터 반(反)중국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축에 이르는 대대적인 대중국 경제 공세에 나서 우리 경제도 2차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방위로 치닫는 신냉전의 틀에서 보면 한반도 안보 상황도 심상찮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월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 상태에서 운영할 것”을 지시했다. 북미 협상 결렬과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감안,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흘린 셈이다.
북한 핵실험 재개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 ‘2017년 7월’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당시 북한은 ‘화성-14’형 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고각 발사로 930Km를 비행했으니 일반궤도로 발사하면 9,000Km까지 날아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셈이다. 미국으로선 북한 핵무기 공격 범위가 남한이나 일본에 국한되는 것과, ICBM으로 자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분노와 화염’을 거론했고, 대북 선제공격론이 확산됐다. 급박한 전운을 해소하기 위해 필사적인 남북ㆍ북미정상회담이 추진됐고, 이듬해인 2018년 4월 가까스로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 등을 골자로 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미 간 무력 충돌 위기가 고조된 건 2017년 외에, 1994년 6월(1차 북핵 위기)과 2003년 1월(2차 위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한미동맹에 기반한 확고한 신뢰가 우리의 입장을 미국에 관철할 지렛대로 작용했고, 중국도 6자 회담을 주선할 정도로 미국에 대해 ‘우호적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미 동맹은 물론, 신냉전으로 중국의 간여 여지도 극히 취약해졌다는 게 문제다.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고민을 반영한 문건이 최근 발표됐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6ㆍ25 전쟁 70년을 맞아 5월 29일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게재한 기고문이다. 문 특보도 기고문에서 “북한이 ICBM을 시험발사 하거나, 7차 핵실험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행동 같은 강경책을 취할 가능성이 크고, 한반도는 전쟁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해법이다. 문 특보는 상황 타개를 위해 미국의 반대에 굴하지 않는 정부의 단호한 남북관계 개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미국의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협상안 수정, 제재 완화를 전제로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핵 군축협상’식 북미 협상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문 특보의 구상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거나, 트럼프 정부가 북한 ICBM 개발을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가정’들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매우 부족하다.
미국은 서슴없이 권총을 뽑는 무서운 나라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에 개입했고,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지난 1월엔 이란의 2인자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전격적인 드론 공격으로 참수해버렸다. 유사시엔 순식간에 야수로 변할 수 있고, 그렇게 해온 나라가 미국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시사하고, 신냉전으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견제력조차 취약해진 현 상황에서는 우리 안보정책도 막연한 ‘희망사항’에 머물 때가 아니다. 당장 위기 상황을 부를 북한의 도발부터 저지하고,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행동’을 멈출 ‘제동 장치’부터 확고히 다져야 한다. 정부는 지금 그런 제동 장치를 확보하고 있는가.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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