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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슬로건과 포스트코로나 시대

입력
2020.06.05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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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디서나 그러하듯이, 미국 선거에서도 슬로건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지난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가지고 표심을 잡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대선 슬로건으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을 사용하다가 “위대함으로의 전환(Transition to Greatness)”으로 변경했다.

선거라는 현장에서 슬로건이 부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대방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내가 이루려고 하는 본질을 누군가와 공감해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건(Slogan)’의 어원이 그렇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전투를 앞두고 스코틀랜드의 켈트족 전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힘을 한데로 모은다. 당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사용되던 갤릭(Gaelic)어로 군대를 뜻하는 ‘sluagh’와 외침을 의미하는 ‘gairm’이 합쳐진 것이 ‘슬로건’이다.

선거 때 후보들이 들고 나오는 슬로건은 경쟁에 임하는 후보들의 외침이고 지지층을 한데 묶고 부동층을 끌어들여 힘을 키우기 위함이니 중세시대의 모습과 본질적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 정치에서만 슬로건이 필요하겠는가. 코로나19로 소리 없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자신을 표현해 온 슬로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용도폐기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코로나 사태 이후 KFC는 반세기가 넘도록 사용해 온 “Finger lickin’ Good(손가락을 빨아먹을 만큼 맛있다)”라는 슬로건을 영국에서 내리기로 했다. 허쉬초콜릿도 “Heartwarming the world(마음이 따뜻해지는 세상)”이라는 슬로건하에 캠페인을 진행했다가 포옹 장면들을 삭제했다.

코로나 상황을 반영하여 “Just do it”의 나이키는 “Play inside, play for the world”를 내놓았고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디다스는 ‘홈팀(HOME TEAM)’ 슬로건을 가지고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슬로건은 때로는 위기 극복을 위한 의기투합의 성격을 띠기도 하는데 이는 현재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SK이노베이션은 회사 사명이 지향하는 가치를 High, Happy, Hi로 담아낸 ‘Hi innovation’을 론칭하면서 구성원의 하나됨과 지향점을 구체화했다. LG화학은 “We connect the science”라는 슬로건 속에 자사의 비전과 의지를 담아냈다.

슬로건은 나치의 선전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처럼 대중을 현혹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자신의 정체성과 건전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성이 그 속에 담겨 있어야 슬로건에 생명력이 부여된다.

아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어떻게든 변화한다는 것이다. 슬로건 속에 어떠한 가치를 담을지 물어본다면 당신이 하려고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떠올리라고 답한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슬로건들을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최영균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ㆍ한국광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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