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서양에도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는 비슷한 속담이 있는걸 보면 남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것은 동서양 공통의 속성인가 싶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과 우리 동네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한참을 달려야 장을 볼 수 있고, 저녁 8시 이후면 한적한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울은 안전하고 생기가 넘친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시장, 편의점, 병원, 식당, 은행, 공원, 버스정거장, 지하철역이 있어 편리하다. 편의시설만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택배시스템, 보건의료체계 등의 기반시설 덕분에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 속에도 서울은 정상적인 도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감염병이나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서울의 장점이 여전히 작동할 수 있을까? 예측 불가능한 각종 재난에 대비하기 위하여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부터 도시까지 단계적으로 생각해 보자.
첫째, 집에서 장기간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위생과 근무환경이 보장되는 택배시스템, 온라인 수업이나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이제 주거환경의 기본이 된다. 리모델링이나 정비사업 등 건물의 신축 시 적용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도보로 접근 가능한 자족형 근린생활권을 더욱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 집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고밀 개발이 가능한 지하철역 주변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미 서울에는 300여개의 역세권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곳을 일자리, 주거, 보육, 재택 지원, 물류유통, 보건 등 비대면 사회에 필요한 기능을 담는 그릇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역세권은 웬만한 재난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족형 근린생활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 안심하고 이동할 수 있는 교통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서울시 대표정책 중 하나인 대중교통이 코로나로 인해 불안하게 인식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대체 불가한 이동수단인데 말이다. 출퇴근길에 숨막히게 끼여가는 혼잡도 완화가 절실하다. GTX 노선과 강북횡단선 등 혼잡 구간에 대한 인프라 확충 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하자. 개인교통 수요 증가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도 추가되면 더욱 좋겠다.
코로나는 아직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에는 많은 일들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동안 우리는 남의 떡과 남의 잔디를 부러워하면서 다른 도시의 인프라와 제도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번 코로나 상황을 통해 서울이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시스템과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반시설과 신속한 위기 대처 능력 외에 장기계획에 따른 추가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주거공간 내 스마트인프라, 역세권 중심의 근린생활권, 대중교통의 확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서울의 잠재력을 더욱 키워 주면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도시기반이 될 것이다.
김인희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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