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탄핵된 최초의 법관은 1803년 존 피커링이었다. 상습 음주자였던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위법한 판결을 내려 문제가 됐다. 타당한 탄핵 사유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반역, 수뢰, 그 외 중대 범죄와 비행’이라는 미국 헌법의 근거 규정이 너무 광범위해서다. 지금까지 총 8명의 연방 판사가 탄핵으로 파면됐는데 그 사유는 수뢰, 탈세, 재직 중 변호사 활동, 가명 파산 신청, 위증, 남부연맹 지지 등이었다. 탄핵 소추ᆞ심판기관인 의회는 불법성 여부보다 직(職)의 의무와 국민 신임을 위배했느냐를 따진다.
□ 우리 헌법도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고위공직자 탄핵 사유를 폭넓게 규정한다. 헌법재판소가 노무현ᆞ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건을 거치며 ‘중대한 법 위반’이어야, 즉 헌법 수호의 이익이 국정 혼란 등 손실을 압도할 때만 탄핵 사유가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법관 탄핵은 중대성 요건이 덜 엄격하다고 학계는 본다. 선출직이 아니어서 민주적 정당성이 강력하지 않고, 파면에 따르는 혼란은 대통령에 비해 작은 반면, 공정한 재판을 확보한다는 법치국가적 이익은 크다는 것이다.
□ 현실에선 법관이 대통령보다 파면하기 어렵다. 탄핵소추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21대 국회에 사법농단을 고발한 판사들이 입성하면서 다시 거론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법관 탄핵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며 “법원 스스로 헌법 위반 행위를 했다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판사에 대한 판결을 일컫는 것이다. 재판부는 문제의 판사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재판 관여는 위헌”이라고 적시했다.
□ 사법농단은 재판받은 당사자의 권리만 침해한 게 아니다.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재판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탄핵은 국민 신임을 복구할 유일한 길이다. 무죄 받은 판사에 탄핵 사유는 없다는 반론이 있지만, 원래 탄핵은 형사처벌과 별개의 파면 절차다. 정작 논란은 엉뚱한 데서 불거질 판이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언급한 김연학 판사를 겨냥해 “법관 탄핵 검토 대상자 1순위”라고 밝히면서다. 보복 탄핵 논란을 자초할 게 아니라 법관 탄핵이 사법부를 구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하지 않겠나.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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