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라인은 긴급한 상황에 비상용으로 쓰는 직통 회선이다. 가장 유명한 핫라인은 1963년 6월 20일 개설된 워싱턴-모스크바 핫라인이다. 미국 백악관과 러시아 크렘린을 잇는 이 핫라인은 한 해 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생겨났다. 당시 공식 외교라인을 통한 일 처리는 매우 느렸다.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쿠바 사태를 끝내자며 보낸 메시지를 워싱턴이 건네받아 해석하는 데만도 무려 12시간이 걸렸다. 워싱턴이 뒤늦게 평화 협상에 응한다는 답장을 쓰고 있을 무렵, 이 사정을 몰랐던 모스크바는 터키에서 미국 미사일을 빼라는 더 강경한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전쟁이 날 뻔한 거다.
□ 영화나 책에서 워싱턴-모스크바 핫라인은 ‘빨간 전화기’로 불리지만, 실제로 전화선은 아니고 빨간색 전화기가 사용된 적도 없다. 처음에는 텔레타이프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말로 주고받으면 오역(誤譯)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훗날 기술이 발전하면서 텔레타이프 방식은 1986년 팩스 방식으로, 2008년 다시 보안 컴퓨터 회선을 통한 이메일 방식으로 각각 바뀌었다. 어쨌든 냉전시기 이후로 두 나라는 핵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중요 사건이 발발할 때마다 핫라인을 이용해 위기 관리 효과를 거뒀다.
□ 남북 간에도 핫라인이 운용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판문점 연락사무소 채널이다. 1971년 9월 20일 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개설됐다. 2018년 남북관계가 훈풍을 맞으며 핫라인은 더 늘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노동당 본부청사 국무위원장 집무실 전화기를 연결한 정상 간 핫라인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선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동ㆍ서해 군사통신연락선,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한 함정 간 핫라인,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간 직통 전화 등 2018년을 계기로 재가동된 채널도 있다.
□ 북한이 9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며 남북 간 연락 채널을 모두 차단했다. 현재 남아 있는 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계기로 개설한 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 핫라인뿐이다. 핫라인이 끊기면 유엔군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직접 북측에 소식을 알렸던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긴급한 상황에 쓰기엔 너무 느리고 번거롭다. 전쟁 중에도 평화 협상은 열리건만, 그 옛날 소련도 인정한 핫라인 필요성을 외면하는 북한의 막무가내를 이해하기 어렵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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