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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쇼닥터, 이대로 방치할건가

입력
2020.06.14 23: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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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9일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크릴오일 41개 제품 가운데 12개에서 항산화제인 에톡시퀸, 추출용매(헥산, 초산에틸 등) 등이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9일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크릴오일 41개 제품 가운데 12개에서 항산화제인 에톡시퀸, 추출용매(헥산, 초산에틸 등) 등이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종편이나 지상파 채널의 건강프로그램에서 의사나 한의사 등이 전문가 권위를 앞세워 ○○성분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얘기할 때 보면 바로 옆 채널 홈쇼핑에서는 해당 제품을 판매하더라.”

방송에 출연해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건강식품을 광고해주는 이른바 ‘쇼닥터’와 방송국, 홈쇼핑 채널 간의 ‘3각 커넥션’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쇼닥터들이 철을 바꿔가며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한 건강식품은 노니, 새싹보리, 효소, 브라질너트, 해독주스, 글루코사민, 콜라겐, 코코넛오일 등 일일이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이 그렇게 좋다던 건강식품들은 왜 잠깐 유행을 탄 뒤 슬그머니 사라졌을까.

요즘 종편이나 지상파 채널의 건강프로그램에서 밀고 있는 가장 ‘핫’한 건강식품은 풍부한 인지질 성분으로 혈액순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크릴오일이다. 크릴오일은 남극 바다에서 주로 서식하는 플랑크톤의 일종인 크릴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인지도 높은 의사가 광고모델로 나와 ‘기름을 녹이는 기름’이라고 선전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판매되는 모든 크릴오일은 ‘어유(魚油)’ 등으로 분류된 일반 식품에 불과하다. 게다가 크릴은 남극에 사는 펭귄이나 고래 등의 주요 식량원으로, 남극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인데 최근 남획이 늘면서 국제적인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크릴오일을 광고하는 의사들은 “인지질은 세포막의 주성분으로 뇌세포에 많이 있다. 그래서 인지질 함량이 50% 이상인 크릴오일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TV 광고에서 물이 든 컵 속에 돼지기름을 띄워 놓고 크릴오일을 부어 막대기로 저은 후 기름이 분산(유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를 근거로 몸속 혈관 속 지방을 녹이고 뇌 기능에 좋다고 바람을 잡는다. “이런 광고는 컵과 우리 몸을 동일시하는 바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멍청이들의 쇼에 불과하며 야바위 수준”이라고 이태호 부산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는 꼬집었다.

인지질은 우리 몸속에서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이어서 구태여 먹을 필요가 없다. 먹는다고 해도 곧바로 몸에 흡수돼 혈액이나 세포막으로 가지도 않는다. 인지질에는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가 많이 함유돼 있어 좋다고 하지만 이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오메가3는 물고기 기름이나 일상적으로 먹는 식물유에 더 많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강식품에 대한 쇼닥터들의 정보 왜곡이 도를 넘어서자 2015년 의료법 시행령을 개정해 ‘쇼닥터 금지 조항’을 넣었다. 의료인이 신문ㆍ방송 등에 출연해 거짓이나 과장된 건강ㆍ의학정보를 제공할 경우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에 자격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고, 복지부는 해당 의료인의 면허를 최대 1년까지 정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자격이 정지된 의료인은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법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결국 중이 제 머리를 못 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쇼닥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가 별도의 감시기구를 만들어 전체 미디어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의료인을 실질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관계 당국인 복지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다. 이처럼 복지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쇼닥터들은 대한의사협회나 대한한의사협회의 솜방망이 처벌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파스로 뇌졸중을 예방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서 대한한의사협회 징계를 받은 한의사가 버젓이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쇼닥터들이 계속 활개를 치면서 소비자들은 왜곡된 건강 정보에 현혹돼 별 효과 없는 건강식품에 돈만 낭비하고 있다. 의사가 광고하는 건강식품을 ‘의사’의 추천으로 보지 말고 광고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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