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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원입법안에 대한 정성평가를 강화해야

입력
2020.06.1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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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줌인 기법으로 촬영한 국회의사당. 홍인기 기자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줌인 기법으로 촬영한 국회의사당. 홍인기 기자

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의원입법안 발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6월 15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나타난 법안 발의 건수는 449건에 달하고 모두 의원입법안들이다. 지난 20대 국회 때 같은 기간 동안 의원입법 발의 건수가 193건에 불과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의원입법안 건수는 예전부터 크게 느는 추세였는데 16대 국회 때 1,651건에 불과했던 의원입법안은 20대 국회 때는 그 10배가 넘는 2만1,594건으로 늘어났다.

의원입법안의 증가는 국회 기능의 활성화를 의미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문제는 법안의 질이다. 공천심사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에서 법안 발의 건수 등 정량적 요소가 중점적으로 고려되다 보니 질보다는 양에 치중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여당의 현역의원 공천심사를 앞두고 한 여당 의원이 하루에만 20개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무더기 법안 발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하니 의원입법을 두고 ‘졸속 입법’ ‘과잉입법’을 넘어서서 ‘막무가내 입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과도한 의원입법안의 발의는 법안심사의 부실과 졸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정부입법은 당정협의, 공청회,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 등을 거치지만 의원입법은 10인 이상 의원의 찬성으로 발의되어 국회 내 법제실 검토만 거치면 상임위로 올라가므로 그만큼 졸속 입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수많은 의원입법안의 홍수 속에서 특수 이익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규제법안, 위헌적인 법안, 분쟁을 야기하는 모호한 법안 등 부실한 법안들이 탄생할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지원 위원회’는 법안발의 및 처리 건수 중심의 평가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해서 정량평가 및 정당별 추천 부문의 포상을 폐지하고 정성평가를 도입한 바 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우수입법선정위원회’를 설치하여 법률 제ㆍ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과정, 법률안 자체의 헌법 합치성 및 법체계 적합성, 법률 시행을 통한 정책효과 및 집행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 후 경제산업ㆍ정치행정ㆍ사회문화 분과별로 나눠 우수 입법을 선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안 발의 건수로 국회의원의 근면성을 평가하는 상황에서 정성평가를 고려한 우수입법 선정을 한다고 해서 의원입법안의 남발이 줄어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법사위 개혁이 추진되는 마당에 부실 입법을 막을 견제장치는 더욱 긴요하다.

21대 국회 때는 의원입법에 대한 정성평가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회성 심사를 거쳐 우수 입법에 대한 시상만 할 것이 아니라 졸속 입법안을 남발하는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졸속 입법안은 발의된 사실 자체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좋은 입법안은 참신하고 투명하며 공익적이고 실용성과 전문성을 갖춘 법안이다. 종래에 제출된 법안에서 문구만 약간 바꾼 참신성이 떨어지는 법안, 특정 지역이나 특수 이익집단을 위한 특혜를 담은 법안, 현실과 유리된 탁상공론식 법안, 효익보다는 비용이 더 많이 수반되는 비효율적인 법안, 문구나 법체계 면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아니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법안을 제안하는 경우 대표발의를 한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점수가 오히려 깎이는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 차원의 장치뿐만 아니라 각 정당 차원에서도 부실한 의원입법을 자체적으로 검증할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나 민간기구도 정량평가를 지양하고 정성평가 위주로 의정활동 평가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좋은 입법 활동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 21대 국회는 수치상으로만 일하는 국회가 아닌 진짜 국민을 위해 좋은 입법 활동을 펼치는 성공한 국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김주영 변호사ㆍ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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