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20달러 때문에 경찰에 목이 졸려 숨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숨 쉴 수 없다”는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저항 정신의 상징이 됐다. 고인의 조카 브룩 윌리엄스는 9일(현지시간) 치러진 장례식에서 “누군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위대했던 적이 있었느냐”고 트럼프 대통령을 일갈했다.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미 전역에선 경찰의 가혹 행위를 규탄하고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의 물결이 이어졌다.
□ 미 의회도 동참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의원 20여명이 8일 의사당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8분46초 동안 묵념했다. 고인의 목이 옥죄인 고통의 시간이다. 한국에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뜻을 보탰다. 초선 의원 9명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미 의원들처럼 앉아 추모 묵념을 했다. 행사를 주도한 한무경 의원은 “우리는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돼서다.
□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가 처음 발의했다. 국회에서도 진보정당 의원들이 잇따라 법안을 냈지만,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됐다. 19대 국회 때는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스스로 철회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성별, 나이, 인종, 언어, 용모 등 20여 가지 차별 금지 사유를 적시하지만 성적 지향만 부각돼 공론화조차 금기시돼 왔다. 그 뒤엔 보수 개신교계의 으름장도 한몫 한다.
□ ‘모든 차별에 반대’ 깃발을 든 한 의원은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를 두고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당 초선으로선 이례적이다. 그간 차별금지법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조차 주저하며 지레 ‘뜨거운 감자’ 취급한 건 정치권이었다. 마침 정의당도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참에 원내 정당 모두가 차별금지법을 함께 발의하자고 했다. 국회가 공론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브룩 윌리엄스의 말을 빌려 말하면, 한국 사회가 언제 평등했던 적이 있었는가.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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