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그 프로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1등을 최고의 가치와 기준으로 삼는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만 주어지는 명예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예전에 사과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에서 어느 강사분이 “가장 품질이 좋고, 가격도 저렴한 사과를 만들어야 1등이 된다.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말로는 쉽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경쟁력’의 의미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보자. 전교 1등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전교 1등의 경쟁력은 많은 사람이 인정해준다. 그러나 등수가 경쟁력의 전부는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즉 나만이 가진 장점 한 가지로 ‘차별화’ 하는 것도 경쟁력이다.
과거에는 소비자의 수요가 ‘10인(人) 1색(色)’으로 획일화돼 규모가 큰 경영체가 더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점점 소비 트렌드가 10인 10색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1인 10색’의 시대이다.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이 다양해져서, 규모가 작아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최근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홈족’이 등장했다. 이른바 홈코노미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커피 한 잔을 집 앞으로 배달해주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심부름 서비스도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따라, 많은 기업이 차별화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대결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신선한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점점 온라인 거래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온라인 농산물 거래 시장’이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의 소통을 위한 ‘SNS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거래 방식도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도 농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SNS 마케팅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그 결과 색깔 있는 상품개발과 자신만의 독특한 스토리, 회원들 간의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로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들과는 다른 아이디어로 농업외교를 꿈꾸는 청년 CEO가 있다. 파미너스(FarminUs)의 최대근 대표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수년간 농업 연구를 하다가 한국에서 농산물 플랫폼 서비스업 회사를 창업했다. 그가 최근 한국의 농업 명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주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의 명품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함이다. 유학 시절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했던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한 외국인을 타깃으로 농산물을 유통하는 것은 큰 시장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레드오션에 1%의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아주 단순한 말 같지만, ‘차별화’라는 키워드는 한국 농업에서도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작은 아이디어를 부각시켜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수반되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국 농업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농업이 되기는 어렵지만,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미 곳곳에서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월드 베스트보다 ‘차별화’의 힘이 한국 농업의 경쟁력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