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 86년만에 모스크로
터키 "모스크로" 발표에 곳곳서 "정치적 결정" 비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위 빼앗을 수도" 압박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성소피아성당.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그 가치를 뽐내던 이곳에서 86년만인 24일(현지시간) 이슬람 예배가 열렸습니다. 이날 수천 명의 이슬람 신도들은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 앞에 모여 기도했고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직접 코란을 암송하며 성당이 모스크로 바뀐 것을 기념했죠.
이슬람 신도들과 달리 이를 지켜보는 국제 사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선에는 비판과 걱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제 사회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종교를 이용해 성소피아성당을 모스크로 바꿨다고 비판했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지요.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는데요. 여기에 유네스코는 성소피아의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상황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지요.
박물관에서 모스크가 된 성당, 성소피아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안타까운데요. 기구하기 짝이 없는 성소피아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성당→모스크→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가 된 성소피아의 사연
지금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성소피아성당은 6세기(532~537년 사이)에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던 시절 지은 겁니다. 앞서 동로마제국은 360년부터 성소피아성당 건립을 시도했지만 화재로 두 차례 소실된 이후 세 번째 시도 만에 건립한 건데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거대하고 웅장한 바실리카'를 목표로 지어진 성소피아성당은 이후 916년 동안 정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당대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고용돼 건물을 설계했으며 건축에 쓰이는 재료는 시리아와 이집트 등 주변 나라 여기저기서 가리지 않고 조달됐죠. 성당 내부의 상징인 모자이크가 완성된 시기는 578년쯤으로 추정되는데요.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아름답게 장식한 게 특징입니다.
이후 가톨릭교 성당으로 역할이 바뀌었다가 이슬람 교회가 된 건 1453년 오스만 튀루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입니다.
메흐메트 2세는 성소피아성당을 개인 모스크로 삼았습니다. 모스크로 바뀌면서 문제는 성소피아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들이 회반죽으로 덮이는 등 훼손됐다는 건데요. 역설적이게도 이는 동시에 보존이 잘 된 비결이기도 합니다. 술탄의 개인 모스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면서 내부 예술품들이 심하게 망가지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거죠.
이후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35년 성소피아의 종교적 의미를 지우고 박물관으로 바꿨습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종교의 굴레 없이 성소피아의 역사적·미술적 가치를 공존케 한 조치인 거죠. 현 세대 세계인에게 성소피아가 박물관으로 불리며 문화의 전당 역할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실제 성소피아 내부는 천장 모자이크와 바닥의 대리석 장식, 벽 곳곳에 새겨진 이슬람 문양 등이 어우려져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모스크로, 그리고 박물관이 되면서 두 종교 간 평화를 추구했던 성소피아가 다시 모스크가 되자 곳곳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특히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터키 정부의 의도가 정치적 우파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요.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재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도 멈추지 않았고요. 이에 터키 정부는 내부 정치에 간섭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어요.
웅장·화려함에 입이 떡 벌어지는 성소피아의 예술성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드는 웅장한 겉모습과 쉴 틈 없이 목운동하게 한다는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유명한 성소피아는 바로 인근의 블루모스크보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약 1,000년 뒤에 지어진 블루모스크보다 미학적 가치가 더 좋다는 평가인데요.
정방형 바실리카 형태에 지름이 32m에 달하는 거대한 돔 지붕이 특징인 성소피아를 짓기 위해 '펜던티브 방식'이 새롭게 도입됐고요. 이는 거대한 돔 지붕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고 하죠. 지금 성소피아를 두르고 서 있는 탑들은 15세기와 1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탑은 모스크 성전의 특징인 '미나렛'이에요. 비잔틴 건축물 내부엔 예수 성화가, 외부엔 이슬람 경전을 널리 퍼트리는 등대가 공존하는 셈이지요.
성소피아는 비잔틴 건축물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하지요.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도 그 특징 중 하나인데요. 과거엔 대리석 기둥과 모자이크 벽 장식 등이 눈길을 끌었겠지만, 지금은 회반죽으로 덮인 모자이크를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일부만 공개된 상태입니다.
모자이크 훼손 가능성에 터키 정부 "일부만 가릴 것" 반박
모자이크 복원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회반죽을 제거하다가 모자이크가 망가지는 경우도 발생했고요. 또 회반죽 위에 그려진 아라베스크 문양도 500년 역사를 지닌 이슬람 문화재였기 때문에 이슬람 신도들이 크게 반발했어요.
터키 정부가 성소피아를 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로 바꾸면서 사람들의 우려를 사는 부분 중 하나도 바로 이 모자이크 장식입니다. 이슬람은 인간이나 동물의 모습을 우상화해 그림 그리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인데요. 과거 오스만 제국 때처럼 회반죽으로 덮는다거나 훼손하는 상황이 다시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에 관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변인실을 통해 모자이크 벽화 등은 일부에 한해 천막을 이용해 가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그리스 정교회 유물 훼손 가능성과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출입을 제한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요. 이미 훼손의 아픔을 한 차례 겪었던 성소피아는 이같은 터키 정부의 공언에도 바들바들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유네스코는 성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두고 사실상 반대의 뜻을 명확히 밝혔어요. 유네스코 대변인은 터키 정부의 결정이 나오기 전 세계문화유산에 어떤 조치를 하려면 유네스코에 사전 검토를 요청하고 심사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성소피아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터키 정부에도 여러차례 알려줬다고 하지요. 하지만 터키 정부는 모스크로 전환하든 말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외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성소피아의 모스크… 국제사회는 부들부들, 관광객은?
유럽연합(EU)부터 미국 정부까지,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부터 가톨릭 수장까지 국제사회 곳곳에서 터키 정부를 향한 유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케말의 박물관 결정은 "현대 터키의 획기적인 결정"이라고 드높이며 현 터키 정부의 결정에 대해선 "이를 뒤집은 터키 최고행정법원의 판결과 그 기념비적 건축물을 종교청이 관리하도록 했다"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고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1일 성명을 통해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은 이 놀라운 문화유산이 서로 다른 종교와 전통,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성소피아의 박물관 지위를 유지시켜 줄 것을 촉구했어요.
그중에서도 역사적 앙숙인 그리스 정부의 비판은 강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보여준 민족주의는 터키를 6세기로 되돌렸다"며 "이번 법원 결정은 터키에 독립된 정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터키는 수백만 정교회 신자의 우려를 듣지 않았다"고 규탄했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성소피아를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지요.
관광객 입장에서도 변화가 생깁니다. 우선 기존 2~3만원 수준이던 입장료가 없어지고 무료로 내부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인데요. 문제는 박물관이 아닌 모스크라는 종교 시설이 되면서 이슬람 예배 시간에는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또 여성이라면 반바지나 반소매 옷을 입고는 들어갈 수 없는 등 복장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크게 달라진 점이죠.
뿐만아니라 모스크로 바뀌는 성소피아 바닥에는 기존 대리석 장식 대신 푸른빛의 카페트가 깔린다고도 하는데요. 비잔틴 건축물의 아름다운 특징 중 하나인 대리석 장식을 직접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은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워 할 것 같네요.
15세기를 거듭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성소피아의 수난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일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터키 정부의 입장과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지켜달라"는 국제사회의 입장도 그만큼 팽팽하고요. 부디 문화재 훼손만큼은 막고 싶은 세계인의 바람을 터키 정부가 외면하지 말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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