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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댓글, 악플과 무플 사이

입력
2020.08.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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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고유민이 지난 5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에 올린 악성 메시지 자제 당부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고유민이 지난 5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에 올린 악성 메시지 자제 당부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포털 사이트 3사가 일제히 이달 중 스포츠 뉴스의 댓글 창을 닫기로 했다. 프로배구 선수였던 고(故) 고유민이 생전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지난달 30일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고유민은 한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마지막 인터뷰에서 입에 담지 못할 악성 댓글을 거론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은 "악플로 고통받는 선수가 더는 없길 바란다"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공개됐다.

체육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일어났다. 프로배구연맹에 이어 야구, 농구 등 다른 종목도 선수, 에이전시 할 것 없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탁구스타 출신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도 스포츠 뉴스의 악플금지법안을 국회에 요청했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 뒤에 숨은 악성 댓글은 해묵은 문제다. 너무나 많은 체육인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체육인의 전문성과 무관한 인신 공격이 난무했다. 외모 품평이 주를 이룬 여자프로골프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댓글에 선수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다. 프로야구 박병호(키움)에겐 집요하게 비난 댓글을 다는 '전담 악플러'까지 있었다. 선수 본인도 인지할 만큼 악명 높은 악플러였던 그는 2018년에 구단 측이 고소 방침을 밝히고서야 자취를 감췄다. 승부의 세계에서 매 순간 결과로 평가 받는 숙명을 지닌 체육인들은 대중의 반응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부의 주장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현혹되는 게 선플보다 악플이 많은 댓글 여론의 함정일 때도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댓글의 무조건적인 폐지엔 반대한다. 1990년대 온라인 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따라붙은 댓글은 '표현의 자유'를 활성화하면서 쌍방향 소통으로 진화했다. 특히 팬들과 늘 가까이서 호흡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계는 생생한 피드백과 함께 형성되는 여론을 즉각 수렴했다. 체육계의 갑질과 횡포, 승부조작, 병역기피 등 각종 비리부터 팬서비스, 제도개선 등 중요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포털 댓글은 '사회적 공론화'의 장이 돼 순기능을 발휘했다. 수많은 기록과 팩트를 들먹여야 하는 스포츠 기자들에게도 댓글은 견제와 균형의 수단이었다. 때로는 데스크를 거치면서까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오류를 정정해주는 마지막 교열의 창구이기도 했다.

지난해 여러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포털 사이트는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했다. 악플은 사라졌지만 피드백 없는 '무플 뉴스'는 무미건조한 일방향 정보 전달로 퇴보했다. 날선 댓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 기사엔 '단독'이 넘쳐난다.

포털 댓글보다 심각한 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연예 뉴스의 포털 댓글을 막자 악플러들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각종 포털의 영상 댓글, 방송사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 다양한 공간으로 옮겨 여전히 공격적인 글을 쏟아내고 있다.

포털 3사는 스포츠 댓글 폐지에 '잠정적'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댓글 서비스 발전 방향의 실효성이 담보되면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명제를 통한 기명성 극대화, 신고제 활성화 및 강력한 제재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묘안을 찾아 건전한 '온라인 광장'이 다시 열리길 기대한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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