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극장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극한직업’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등 관객 1,000만을 넘긴 영화만 5편이었다. 흥행순위 6위 ‘엑시트’는 942만명이 봐 1,000만 영화나 다름없었다. 한해 관객이 2억2,667만명이었고, 매출액은 1조9,139억원이었다. 둘 다 역대 최고 수치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시장이 포화상태라 해외에 적극 눈을 돌려야 한다”는 분석이 따랐다.
해가 바뀌어 세계 영화계를 흔든 낭보가 전해졌다. 2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한국 영화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호기를 잡았다는 기대와 전망이 잇달았다. 한국 영화계에는 낙관과 희망과 설렘이 넘쳐났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상황을 뒤집었다. 비관과 절망과 탄식이 영화계에 가득하다.
지난 1주일가량 국내 영상산업을 뒤흔들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국내 첫 우주 영화를 표방한 SF ‘승리호’가 극장 개봉을 건너뛰고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넷플릭스로 직행한다는 뉴스가 큰 파장을 불렀다.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협의 중이고 아직 결정된 건 없다”는 입장이지만, 영화계에선 ‘승리호’의 넷플릭스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승리호’의 제작비는 240억원이다. 덩치를 키워 매출을 더 키우려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전략이 적용된 영화다. 극장만 따졌을 때 700만명가량은 봐야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가장 손님이 많은 토요일 관객이 17만명 정도인 요즘 시장 상황에선 700만명은 에베레스트 못지않게 높아 보인다. 영화의 수익 80%가 극장에서 형성되는 현실에서 ‘승리호’의 극장 개봉 포기는 영화인들에게는 전례 없는 충격과 공포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 팔린다면 제작비를 건지고 수익 일부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1,000만 관객 같은 대박 기회는 아예 사라진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닥친다고 했나.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GV는 지난 19일 관객 급감에 따른 자구책을 발표했다. 3년내 직영 상영관을 약 30% 정도 줄이고, 당분간 일부 상영관은 주말에만 문을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3년내’는 건물 임대 계약과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붙인 조건이다. CGV는 당장이라도 자사 상영관의 30%를 문 닫고 싶을 것이다.
한편에서 콧노래가 들린 한 주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넷플릭스는 3분기 실적 발표를 했는데, 올해 전 세계 유료 회원은 2,810만명이 늘어 지난해 전체 증가치를 이미 넘어섰다. 3분기 회원 증가를 주도한 곳으로 한국과 일본이 꼽힌다. 21일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한국 유료 회원 수는 330만명(9월 30일 기준)이다. 계정 하나로 2명 이상 동시 접속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넷플릭스 실제 이용자 수는 7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극장이라는 주요 판매처가 쪼그라드니 영화 제작과 소비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대작 영화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동네 구석구석에까지 동시 상영되던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멀티플렉스 체인이라는 탄탄한 공급망 덕에 가능했던 1,000만 영화는 코로나19 이전 시대의 유물이 될 참이다. 영화산업의 변동은 영상산업의 전면 재편과 맞물려 있다. 우리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이미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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