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체제변혁 지경에 진입한 나라
공인의식 없는 몰염치가 설치는 권력
흐트러진 국시(國是) 차제에 다잡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에 관해 한 말은 새삼 나라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게 한다. 대통령은 업자들이 정부의 코로나19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영업이 제한돼 매출이 급감하는 데도 꼬박꼬박 내야 하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더욱 힘겨운 상황을 언급했다. 그리곤 “위기 상황에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눌 방안을 찾으라”고 했다.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되면서 여야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이미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추가 지원책과 임대료 부담 경감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공론이 형성됐다. 수재민 지원처럼 전대미문의 전염병 때문에 생업 위기를 맞은 업자들에게 공공부조를 가동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업자들의 임대료 고통을 재난이 빚은 이례적 현상으로 본 게 아니라,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구조 탓으로 보는 날 선 인식을 뚜렷이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민 다수는 그런 나라를 향한 변화가 정의와 공정, 포용의 사회윤리를 강화하고, 걸맞게 제도와 관행을 개량해 나가자는 걸로 이해했다. 하지만 지난 3년여간 ‘소주성 정책’과 중등 역사교과서 개정, 기업 규제 및 권력기관 개편 등을 거침없이 밀어붙여 온 대통령이 임기 마무리 시점에 새삼 드러낸 날 선 인식은 나라가 지금 자유민주주의 개량 정도를 넘어 체제 변혁이라는 낯선 경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운다.
하지만 정권의 신망은 땅에 떨어져 곤죽이 된 상태다. 체제 변혁에 대한 공감을 넓히려는 전략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국민을 선전ㆍ선동의 대상으로 여겨 현실을 호도하는 얕은 술책을 일삼은 게 불신을 쌓아왔다. 정권 초기 일자리를 비롯한 각종 경제통계 왜곡과 아전인수식 해석은 그나마 약과였다. 대통령 행사는 세계사적 장면으로 포장된 ‘도보다리 산책’부터 최근 탄소중립 선언 흑백영상 TV 생중계에 이르기까지 절제 없는 극적(劇的) 과잉으로 되레 여론조작에 대한 불쾌감을 증폭시켰다.
메시지 연출 중독은 급기야 정책 거짓말을 일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집값 폭등과 관련해 결격 통계를 버젓이 인용한 거짓을 서슴지 않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백신 조기확보 실패와 관련해 “화이자 등이 우리에게 계약을 재촉하는 상황”이라거나 “백신 접종을 서두르는 것이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깜찍한 해명으로 국민을 아연케 했다.
정작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정권 엘리트들에게 만연한 공적(公的) 윤리의 실종이라는 전염병이다. 지도적 공인이라면, 적어도 공적으로는 자신이 공인으로서 천명하고 내세운 가치와 명분에 부합하는 실존을 구현하는 게 최소한의 양식이다. 하지만 “절차적 불법은 없었다”는 요설로 자신의 공적 위선을 얼버무리려 했던 조국씨부터 ‘윤석열 찍어내기’를 줄곧 검찰 개혁으로 호도하며 좌충우돌하다 좌초한 추미애 법무장관, 그리고 그들 주변의 정치 홍위병들에 이르기까지 현 정권 엘리트들은 스스로 원칙을 잃고 표류하며 몰염치한 권력이 판치는 이상한 나라의 풍경을 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권은 법원의 윤석열ㆍ정경심 판결을 애써 변혁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 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변혁을 내세우며 '멋대로 권력'이 설치는 나라 꼴에 대한 국민과 역사의 준엄한 경고다. 개각을 통한 국정쇄신이 거론되지만, 국정방향이 바뀔 걸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차제에 좀 더 냉철하게 성찰하고, 민심을 두려워하는 초심으로 돌아가 이상해진 나라 꼴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는데 힘을 쏟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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