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근교의 한인 타운 뉴몰든(New Malden)에서 목격한 일이다. 도로에서 추돌사고로 한국남성과 영국청년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그 한국인은 웃옷까지 벗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이가 아버지뻘'인 자기에게 대드는 청년이 버릇없어 보였는지 "How old are you?(너 몇 살이야?)"를 외쳤고, 갑자기 왜 나이를 묻는지 어리둥절해 하던 청년의 표정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나이가 중요하면서도 한국만큼 나이를 세는 방식이 복잡한 곳도 없다. 서양에서 아이가 8월생이면 태어난 다음해 8월에 1살이 되지만, 한국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다. 이것은 태아에게도 해당되어 임신을 하면 바로 1개월이기 때문에 한국의 임신기간은 10개월인 반면, 서양에서는 9개월이다. 한국의 나이가 1살부터인 것은 건물들이 1층에서 시작되는 것과 유사한데, 서양에서는 첫 층을 지상층(ground floor)이라 하고 그 위층이 1층(first floor)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에게 물체의 시작은 1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고, 1 이전의 개념에 대해 어색해하는 것 같다. 사실, 인도 아라비아 숫자 0이 도입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로 최근이고, 그 이전에는 1(一), 2(二) 등 한문 숫자를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어떤 시작에 바로 1을 부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식 나이 계산에서 또 다른 의문점은, 왜 해가 바뀔 때 나이가 한 살 더 추가되느냐는 것이다. 12월에 태어나서 1살인 아기가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어, 결국 태어난 지 두 달 안에 2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年)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다른 식으로도 나타난다. 우리는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등을 계산할 때 '햇수로 몇 년'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2000년 8월에 어디로 이사를 갔다가 2003년 8월에 그 곳을 떠났다면 그 곳에서 만 3년을 산 것인데, 이 경우에 우리는 흔히 햇수로 4년을 살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보면, 위의 12월에 태어난 아기는 이듬해 초에 벌써 햇수로 2년을 산 셈이다.
연(年)을 중시하는 경향은 1년 24절기의 주기로 이루어지던 농경문화에서 설명을 찾을 수 있겠다. 한 해의 출발이 새로운 농사의 개시와 맞물리면서, 사람들에게도 한 살을 더 부여하고, 무엇을 하든 으레 햇수를 세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서양의 학교들이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입춘절기에 학교가 기지개를 켜는 것도 그러한 연 중심의 생각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더구나, 생일에 따른 만 연령의 경우와는 다르게, 나이가 연 단위로 바뀌는 것은 한 연도 내에서 나이의 서열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사람들 간의 수직관계가 중요했던 전통사회에 딱 부합하였다.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어른스럽다' '성숙하다' '철이 들었다' 등은 미덕과 칭찬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나이가 많아서 불이익을 당하는 '나이 차별주의(ageism)'가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연령에 비해 어려 보이는 '동안'의 칭송으로 '자기관리' 없이 그냥 편하게 늙어가는 것이 눈치 보이기도 한다. 이런 추세라면 손윗사람이라고 대접을 받으려는 전통적인 태도와 나이가 부풀려지는 한국식 나이 계산법은 점점 인기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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