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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놀러 오는 집

입력
2024.10.31 22: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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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많은 집

손님이 많은 집

연희동에 있던 대학 친구 재섭이네는 ‘재섭장’으로 불리곤 했다. 친구들이 여관처럼 드나들어 재섭이 여동생이 자조적으로 붙인 별명이었다. 그런데 친구나 선후배들이 자주 놀러 가는 집이 재섭이네만은 아니었다. 구파발에 있던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다. 당연히 우리 집도 ‘성준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현관으로 가서 신발 수를 세어 반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전날 술을 마시다 밤늦게 몰려와 시시덕거리다 잠든 아들 친구들의 인원수에 맞춰 밥을 해놓고 출근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친구들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들아.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오는 집이 좋은 집이란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니 아내도 나만큼이나 집에 친구들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파트 거실에 소파 대신 큰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하고 손님을 맞았다. 손님들은 책과 영화와 음악 얘기를 하며 술을 마셨고 취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파트를 떠나 성북동 꼭대기 작은 단독주택을 구입해 수리를 한 뒤 들어갔다. 아내가 집 이름을 지어보라고 하길래 ‘성북동 소행성(小幸星)’이라 했다. ‘작지만 행복한 별’이란 뜻이다. 너무 작아서 침대도 들일 수 없는 집이었지만 그 집엔 옥상이 있었다. 우리는 밤이면 옥상 파티를 했다. 성북동은 문화인들의 메카였다. 성북동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김혜나, 박호산 같은 배우들과 친구가 되었고 고양이서점 ‘책보냥’의 김대영 작가, 그리고 서점의 단골인 양익준 감독과도 이웃이 되었다. 그런데 예술인들은 강적이었다. 그들은 새벽 두 시가 되면 그때부터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직장인이었던 아내와 나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정적으로 파티를 금지했다. 그래도 손님들은 무시로 놀러 왔다.

손님이 많은 집

손님이 많은 집

성북동 아랫동네 한옥을 발견해 수리한 뒤 들어갔다. 마당과 마루가 있는 한옥이라 그런지 방송도 몇 번 탔고 손님이 더 많아졌다. 이사 과정에서 알게 된 연기자 임세미씨, 뮤지션 겸 작가 요조씨가 같은 동네 주민이라 가끔 밥을 먹으러 왔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만들었던 이동원 PD가 ‘당신 책을 좋아하는 극작가'라고 알려줘서 만난 사람은 오세혁 작가였다. 독서 모임 ‘독하다 토요일’도 여기서 모였고 북토크 행사나 글쓰기·책 쓰기 워크숍도 자주 열었다.

아내와 나는 해마다 5월 결혼기념일 주간이면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19가 발발한 해에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둘 다 회사를 그만둬서 여행 경비도 없었다. 동네잔치나 하자며 SNS에 공고를 올렸다. "성북동에 사는 분들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아무 때나 들르세요. 비빔밥과 차가 있고 저녁엔 술도 있어요." 마당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밤늦도록 마을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치고 웃음꽃을 피우며 놀았다.

얼마 전 보령으로 이사를 갔다. 서울에도 작은 거처를 마련했지만 너무 좁아 누구를 초대할 정도는 못 되고 보령 집은 아직 어수선하다. 내년엔 놀러 와도 좋을 만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보령 부동산을 뒤지고 있다. 사람들이 놀러 오는 집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니까.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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