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양형위원회가 11일 전체회의를 열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아 종업원을 산업재해로 숨지게 한 사업주 등 책임자에 대한 권고 형량을 큰 폭으로 올렸다. 양형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 가중 요인을 감안한 양형 기준을 기존보다 2~3년 늘렸다. '5년 내 재범' 등을 적용하면 최대 권고 형량은 10년 6개월로 높아진다. 사업주에만 적용하던 양형 기준을 발주 업체 책임자에게 나누어 물을 수도 있게 했다.
국내 산업재해 현실은 노동자 인권 보호라는 당위성은 물론이고 경제 규모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국격에도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산재를 줄이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사고 사망이 연간 800명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벌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이 능사는 아니지만 산재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사정을 감안하면 형량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후 징계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현장의 안전 문화를 확산하거나 법적 규제를 통해 안전조치를 강제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국회를 통과했지만 산재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유예·제외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중대재해법 통과 이후 발생한 여수 금호티앤엘 하청업체와 광주 플라스틱 공장 사망 사고가 이런 법 체계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대재해법 도입에 앞서 비슷한 취지로 산안법이 전면 개정된 것은 태안화력발전 김용균 사망 사건이 계기였다. 하지만 개정된 법으로는 김용균 같은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중대재해법도 종업원수 쪼개기나 안전책임자 별도 지정으로 기업이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법을 보완하거나 정부의 감시 감독을 강화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되풀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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