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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 때만 외치는 ‘백신 주권’

입력
2021.01.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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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로이터 연합뉴스

이르면 설 연휴 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주요 선진국에서 발 빠르게 개발한 백신 덕분에 1년 넘게 소소한 일상생활마저 앗아갔던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혹시나 하며 국산 코로나19 백신을 고대하던 국민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초반, 높아진 K-바이오의 위상에 희망을 걸며 우리나라도 백신을 재빨리 개발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던 국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백신 개발 과정을 알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신을 개발하려면 쥐ㆍ원숭이 등 동물 실험을 거친 뒤(전 임상) 독성 여부를 살펴보는 1상, 용량을 얼마나 쓸지 정하는 2상, 그리고 1만5,000~4만명의 표본 집단을 통해 항체ㆍ효능을 파악하는 3상 임상 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ㆍ제넥신ㆍ진원생명과학ㆍ셀리드 등 4개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진력하고 있지만 1~2상 임상에 머물고 있어 성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결국 외국 백신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게 되자 ‘백신 주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나온 구두선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요구에 한숨부터 내쉰다. 대한백신학회장을 지낸 강진한 가톨릭대 백신바이오연구소장은 “백신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도 15년 정도 걸리는데 정부가 국내 제약사들에게 ‘모든 걸 알아서 하라’고 하면 감염병 대유행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이래 꾸준히 발전해온 200여 년의 선진국 백신 개발 역사를 단숨에 좇아갈 수는 없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경우 연구개발 인력만 1,500~1,800명에, 연구비도 연간 10조원이 넘는데, 이에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에 나온 코로나19 백신도 모두 10~20년 이어온 연구의 결과물이다.

지금까지는 외국 백신에 기대어 버틸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도 이제는 국산 백신을 개발해 '백신 주권'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19 돌연변이가 계속 발생하고 또다른 바이러스가 새로운 팬데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산 백신 개발에 관심을 계속 기울이지만 투자 규모나 제도 면에서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해 정부가 신속히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하고, 국회도 3차 추경을 통해 백신 개발 예산 490억원을 책정했지만 지금까지 109억원밖에 집행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한타바이러스ㆍ폐렴구균ㆍ대상포진ㆍ인플루엔자ㆍB형 간염 백신을 개발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된다. 정부는 백신 개발에 많은 시간과 인력, 비용이 든다는 점을 잊지 말고 이를 뒷받침하는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더딘 이유로 ‘백신 플랫폼(특정 항원이나 유전정보 등만 바꾸어 백신을 개발하는 기술)’의 부재가 꼽히고 있다. 정부는 백신 플랫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덧붙여 국민도 느긋이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백신은 도깨비 방망이로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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