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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

입력
2021.02.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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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이라고 적힌 표지판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 사업 적극 지지와 함께 한일해저터널 건설 추진도 약속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이라고 적힌 표지판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 사업 적극 지지와 함께 한일해저터널 건설 추진도 약속했다.


“한일 해저터널(이하 한일터널)을 건설한다면 비용은 일본이 부담해야죠.” 2010년 5월 제주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무렵 의제 중에 한일, 한중 해저터널 건설 구상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묻자, 담당 관료가 농담 투로 던진 답변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옆에 있던 다른 관료는 “일본이 건설비용만 부담해서 되나, 이용료도 내야지”라고 한술 더 떠 함께 웃었다. 한일터널 효용은 일본이 훨씬 크니, 일본이 적극적으로 요청하면 못 이기는 척 수용하면 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 그 관료 말대로 한일터널은 일본의 숙원이다. 1930년대에 처음 구상한 이 아이디어는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일본과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1만㎞ ‘제1 종관철도’ 계획으로 구체화하면서 한일터널 건설을 위한 지질검사까지 실시했다. 1943년 착공할 계획이었으나,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무산됐다. 이후 일본의 거품경제가 절정이던 1980년대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해저터널 추진단체들이 결성돼 지금도 활동 중이다.

□ 우리나라에서 이 구상을 처음 꺼낸 건 1981년 문선명 통일교 총재다. 정치권에서는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처음 거론했다. 1999년 김대중, 2003년 노무현 대통령도 언급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이후 2008년 첫 한중일 정례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3국 간 관계가 좋아지자, 한일터널과 함께 한중터널 계획도 제기됐다. 하지만 2011년 국토해양부가 교통연구원 검토 결과를 토대로 한일, 한중 해저터널 모두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한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검토는 중단됐다.

□ 잠잠했던 한일터널을 지난 1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 부산에서 지지율이 하락하자, 가덕도 신공항 건설 지지를 공표하며 ‘끼워넣기 선물’처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일터널이 개통되면 관문인 부산ㆍ경남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리ㆍ경제적으로 보면 더 절실한 것은 섬나라 일본이다. 2011년 우리 정부가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내릴 때도 앞에 언급한 우리 관료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일터널은 10여년 전 일본이 추산한 건설비가 10조~15조엔에 달한다. 선거용으로 내놓기엔 너무 비싼 카드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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