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프라이팬 미얀마 시위 현장에 등장
'냄비 시위' 1830년대 시작... 오래된 전통
중남미 가장 활발, 빈곤층 분노 표출 수단
요즘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거리는 ‘쨍그랑’ 소리로 가득하다. 시민들이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표시로 저녁마다 냄비와 프라이팬을 마구 두드리기 때문이다. 미얀마 시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도 아니다. ‘주방 용품’은 지구촌 시위 현장의 단골손님이 된지 오래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소리”라며 ‘냄비 시위’의 위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진 반(反)인종차별 집회 현장에서도 냄비와 프라이팬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 일부 미 도시들에서는 야간통행 금지령이 내려지자 집에 갇힌 시민들이 창문 밖으로 주방도구를 두드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냄비 시위의 시초는 유럽이다. WP에 따르면 이런 시위 방식은 1830년대 프랑스 루이 필립 1세 정권의 실정에 항의하기 위해 파리 주부들이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치면서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냄비 시위는 2008년 아이슬란드에서 선보였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가 아이슬란드에도 닥치자 시민들은 그 해 말부터 위기를 자초한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연일 수많은 냄비와 솥이 등장했고, 마침내 정권 퇴진과 국민참여 개헌까지 이끌어냈다. “주방용품의 혁명”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현재 냄비 시위가 가장 활발한 지역은 중남미다. 중남미 특유의 시위 문화를 가리켜 ‘카세롤라소(cacerolazo)’라고 부르는데 냄비를 뜻하는 스페인어 ‘카세롤라(cacerola)’에 두드린다는 의미를 지닌 접미사 ‘아소(azo)’를 붙인 말이다. 카세롤라소는 ‘텅 빈 냄비나 프라이팬처럼 내 배도 텅 비었다’는 의미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빈곤층이 정부에 분노를 표출하는 대명사가 됐다. 동원되는 주방용품도 천차만별이다. 프라이팬, 밥솥, 주전자, 샐러드 집게 등 소리를 내는 집기는 죄다 시위 도구가 된다. 1964년 브라질 주부들이 식량난을 못 이기고 냄비를 들고 뛰쳐나온 것이 출발점이다. 마가렛 파워 미 일리노이공대 교수는 미 인터넷매체 복스 인터뷰에서 “과거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뜻하던 냄비와 팬이 이제는 강력한 항의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의 반정부 집회 현장에서 역시 주방용품은 빠지지 않았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냄비 시위는 정권 교체를 이루는 등 중남미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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