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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의 희한한 싸움

입력
2021.02.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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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재난지원책 두고 정권 ‘동네북’ 전락
재정건전성 우려 내세우다 번번이 굴복
둑 터진 재정시책에 분명한 소신 밝혀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8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8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보면 싸움도 해 본 사람이 제대로 한다는 얘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싸움이 하도 민망해 보여서 그렇다. 물론 경제부총리쯤 되는 사람이 그렇게 어설플 리는 만무하니, 어쩌면 ‘짜고 치는 고스톱’일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역대 어떤 경제장관도 지금 홍 부총리만큼 여당과 정권 핵심으로부터 드러내 놓고 욕을 많이 먹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경제부총리는 정권의 경제와 재정, 민생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세력의 정치적 지향을 가장 잘 구현할 인물을 엄선하고, 일단 임명한 후엔 마땅한 후원과 지지로 정책을 든든히 뒷받침해 온 게 전례였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군부정권 때의 부총리들은 물론이고, IMF 체제에서 전권을 쥐고 구조조정에 나섰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이헌재 전 부총리까지 대체로 그랬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보기조차 안쓰러울 정도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지난해 3월 코로나 추경 당정협의에서 불거진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면박은 정권이 홍 부총리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 사건이다. 총선 직전이라 당으로서는 과감한 시책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당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대놓고 홍 부총리를 질책하며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그게 처음은 아니다. 애초부터 파격적 확장 재정정책을 추구한 현 정권과 수십 년 간 재정건전성 유지에 힘써 온 기재부와의 신경전은 훨씬 전에 이미 점화한 상태였다. 2019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홍 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40% 안팎에서, 관리재정수지는 -3% 이내에서 각각 관리하겠다”고 보고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채무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200%가 넘는데 우리가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근거가 뭐냐”며 공개 질책에 나선 것이다.

‘곳간’을 열라는 정권과, ‘곳간지기’로서 홍 부총리의 끝없는 신경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하고, 선거 같은 정치일정이 맞물리면서 점점 격화하는 양상이 됐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싸움’은 진의가 헷갈릴 정도로 모호했다. 2019년 1월 증권거래세 인하부터 시작해 지난해 10월에야 내놓은 속 빈 재정준칙에 이르기까지 여당 정책에 저항을 시도한 게 8번이었으나, 8번 모두 뒷걸음질 쳐 ‘홍백기(白旗)’니 ‘홍두사미’니 하는 민망한 별명까지 얻게 됐다.

요즘 홍 부총리는 싸움에 또 한 번 떼밀려 나선 상황이다. 지난 2일 이낙연 당 대표가 보편과 선별지원을 동시 진행하는 4차 재난지원책 추진을 밝히자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공개 반발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당에서 대변인까지 나서 사퇴를 거론하며 몰아붙이자, 한때 직(職)을 건 듯했던 홍 부총리는 국회에 나가 “재정 당국이 재정건전성을 보는 시각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며 뒤를 열어 두는 듯한 묘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 소상공ㆍ자영업자 지원은 나랏빚을 더 내서라도 필사적인 경제회생책으로 추진되는 게 맞다. 다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그런 명분을 내세워 무작정 ‘돈 뿌리기’에 나서는 게 문제다. 이 절박한 시점에 기재부가 욕 먹을 게 뻔한 재정건전성을 거론하는 이유도 그 ‘지나침’에 대한 충정 어린 우려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홍 부총리는 이번에도 상황을 어물쩍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진퇴와 관계 없이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재정정책이 무엇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경제사령탑으로서 그걸 견지해 나가겠다는 확고한 소신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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