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한국 뉴스에 귀를 세우고 태극기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낯선 땅에서 목숨 바쳐 지켜낸 작은 나라의 소식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남의 일 같지 않은 노병들이다.
이들이 흘러간 시간에 가슴을 저미는 이유가 또 있다. 한국인은 그들의 희생을 알지 못했고, 파병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 멕시코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한국전 참전 기억을 풀어 놓는 그들에게 귀 기울여 주는 이들은 없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에 멕시코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한국전 영웅이지만, 그렇게 잊힌 채 70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었던 작년 6월, 주한 멕시코 대사는 지금까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우리 외교부를 통해 공개했다. 한국전 참전 미군 180만명 중 10%인 18만명이 라틴계였으며 그중 10만여명이 멕시칸, 멕시칸-아메리칸이었고, 당시 멕시코계 출신으로 구성된 부대도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전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한 멕시칸 참전용사들이 아직 살아 계실까. 있다면 90세 전후가 됐을 것이다.' 현실을 떠올리니 지체할 수가 없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우선 현지 언론기고를 통해 멕시코인 한국전 참전 사실을 알리고, 생존 참전용사 수소문에 나섰다. 그해 7월, 드디어 나는 멕시코시티 근교에 거주하시는 호세 비야레알(90)옹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전 참전 멕시칸 영웅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어 9월에는 과달라하라 지역에서 로베르토 바르보사(90)옹을 찾았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쟁의 참상과 함께 7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슴 깊이 남아 있던 '스무 살 청년'의 슬픔, 서러움, 두려움과 고통을 보았다. 멕시코의 부모님과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미국의 어느 항구에서 사선으로 떠나는 청년의 모습, 성조기 아래서 라틴계 용사가 받았을 법한 차별, 한국 땅에 발을 내디딘 뒤 몰려든 죽음의 공포에 떨던 청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작전 중 전우를 잃은 기억을 풀어낼 때는 한참을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그 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죄송함마저 들었다. 비야레알옹은 그 기억들을 '어느 멕시칸의 한국에서의 기억'이란 자필 자서전으로 묶어 놓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는 그들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사관은 이분들께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앞으로 참전용사회 구성을 지원하고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자식과 손주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버지, 할아버지일 뿐 아니라 그들이 지켜낸 한국에서도 자랑스러운 멕시칸 용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을 방문하는 감격의 날도 선물할 수 있기를, 그들의 기억으로 양국이 더욱 끈끈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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