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피의 일요일' 최소 18명, SNS엔 "26명" 사망
'봄 혁명' 청년, 중학교 여교사, 아이 엄마 등 희생??
시위대에 조준사격·옥상저격, 일반 시민에 난사
수치 고문 화상 법원 심리 진행, "건강해 보여"
유엔 "규탄하는 말보다 전 세계가 행동에 나설 때"
지난달 28일 오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 거리에서 흰색 헬멧을 쓴 한 청년(23)이 자신이 흘린 피 속에 누워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휴대폰을 움켜쥐고 있다. 계속되는 총성을 피해 사람들은 달아나고 일부는 벽에 붙어 앉았다. 한 사람이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대여섯 명이 그를 옮겼으나 끝내 병원에서 사망했다. 40초짜리 영상에 등장하는 그는 양곤의 첫 희생자로 알려졌다. 피 묻은 그의 윗옷에는 아랍의 봄을 뜻하는 '봄 혁명'이 인쇄돼 있었다. 그는 숨지기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유엔이 행동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한가"라고 적었다.
미얀마는 지금 아비규환이다. 군부의 무차별 그리고 조준 사격에 스러진 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유혈 참극의 희생자 숫자를 가늠하는 게 무의미할 지경이다. 국제사회는 격노했으나 사태 해결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쿠데타 발발 한 달째, 총탄에 목숨을 잃은 미얀마 청년의 절규처럼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필요한가".
1일 현지 매체와 외신 등이 사진과 영상으로 전파한 전날 미얀마 전역의 유혈 사태 현장은 참혹, 그 자체다. 양곤의 중학교 여교사는 팔꿈치에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뒤 이송 도중 숨졌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오전 8시 행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며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군인들이 최루탄을 던지고 실탄을 쐈다"고 증언했다.
제2도시 만달레이에선 머리에 총격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머리에 총상을 입은 듯 피를 흘리며 대로에 누워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는 아이 엄마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3명이 숨지고 12명이 총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 남부 도시 다웨이에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반복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유엔은 전날 미얀마 여러 주요 도시에서 최소 18명이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SNS엔 26명이 사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지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2월 1일 쿠데타 이후 한 달간 적어도 시민 30명이 군경의 총격과 진압 과정에서 숨지고 1,13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전날의 참극을 '피의 일요일'이라 명명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수도 네피도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법원 심리에 출석한 이날도 시민들은 시위를 이어갔다. 수치 고문이 변호인을 통해서라도 모습을 보인 건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수치 고문은 불안을 조장하는 정보 발표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됐으나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변호인은 전했다.
군부의 진압 행태를 감안하면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경고 사격과 허공 난사뿐 아니라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향한 무차별 사격과 시위대를 겨냥한 조준 사격까지 등장했다.
양곤 한 시민(33)은 한국일보에 "흩어지라는 방송과 함께 군경 5, 6명이 앞에 도열해 무릎을 꿇고 사격했다"며 "누군가 '무릎 아래' '무릎 아래'라고 지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경찰은 시위대뿐 아니라 막 거리로 나온 사람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현지 매체에 전했다.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인이) 건물 옥상에서 시위대를 저격했다"는 목격담도 있다. 실제 SNS엔 군경이 무릎을 꿇고 시위대를 조준하는 사진과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혐오스러운 폭력"(미국), "용납할 수 없는 폭력"(유엔) "노골적인 국제법 무시"(유럽연합)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미얀마 유혈 사태를 강력 규탄했다. 추가 대응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미얀마 국민을 지지하는 결연한 국제사회의 응집된 행동이 없다면 미얀마의 악몽은 더 악화할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리고 거듭 강조했다. "규탄하는 말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 세계가, 우리 모두가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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