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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신공항 정치’의 막막함

입력
2021.03.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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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국책사업의 정치적 성격 인정해도
특별법 처리 과정은 한국정치의 수치
보수 차별화 실패한 국민의힘 한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두 가지 현실에 요즘 무력감을 느낀다. 조국씨의 목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그중 하나다. 자녀의 대학입시 ‘스펙 만들기’나, 그게 잘난 부모를 두지 못한 보통 입시생들의 기회를 약탈하는 짓임을 몰랐을 리 없는 조씨라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 좀 자제하길 바랐다. 하지만 SNS를 통해 증폭되는 조씨의 목소리는 도무지 잦아들지 않고, 그 ‘층간소음’에 대처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현실에 맥이 빠지는 것이다.

무력감의 또 다른 발원지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뒤죽박죽 정치다. 조씨 목소리는 주관적 불쾌감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끝내 멋대로 흘러가버린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정치가 아무리 타락해도 막상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새삼스럽지만 답답한 현실을 일깨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슴이 뛴다”며 예찬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두고 ‘정치의 타락’을 거론하는 이유는 가덕도 신공항 추진 자체가 전혀 용납될 수 없는 실책이라서가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나름의 정당성이 있고, 어떤 정책에도 비판과 의구심이 안 나올 순 없다. 결국 정치가 그걸 돌파하는 것이고, 가덕도 신공항 역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의 명분과 이유가 절실한 만큼, 이런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추진 자체를 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당초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2002년 중국 민항기의 김해공항 돗대산 추락사고를 계기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타당성 검토를 공식 지시하면서 본격화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밀양 하남과 부산 가덕도 등 2개 후보지를 평가한 후, 모두 경제성이 낮다며 2011년 4월 사업을 백지화하고 사과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사업이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물론 PK(부산ㆍ울산ㆍ경남) 표심을 노린 정치적 카드였다. 그리곤 막상 당선 후엔 영남권 5개 시도 지자체장들의 합의로 김해신공항, 밀양, 가덕도 등 3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전문기관의 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를 따르기로 방향을 잡았다.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맡은 2016년 타당성 조사에선 김해신공항 건설이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소음 문제 등에 반발하고, 박 대통령 탄핵 후 문재인 대통령이 “24시간 운영되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며 사업은 원점 회귀했다. 이후 여당이 지난해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최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처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 역시 4월 부산시장 보선은 물론, 차기 대선까지 PK 민심을 붙잡아 두려는 정치적 승부수다.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저열했다는 데 있다. 특히 4월 보선을 의식해 특별법을 과속 처리한 과정은 ‘입법농단’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아예 입지 선정 과정조차 없이 가덕도를 공항 예정지로 못 박은 것부터 법으로 의무화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사실상 면제토록 한 것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채 처리됐다. 이 정도면 21대 국회는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법’에 대한 위헌성조차 욕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정작 현 정권의 타락보다 더 한심한 건 보수 재건을 기치로 내세워온 국민의힘이다. 현실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이 보수정치의 최대 가치라면, 국민의힘은 당장 부산 보선을 포기하더라도, 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당론으로 특별법에 반대해야 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러지 못함으로써 보수의 가치를 차별화할 기회를 놓쳤고, 그게 고작 이 나라 정치의 한계라는 게 국민에게 무력감을 주는 딱한 현실인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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